[인사이드]NH금융 패러독스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5.02.0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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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한 금융회사는? 뜻밖에도, NH금융그룹을 꼽는 금융인들이 많다. 사실 NH가, 그 보수적이고 낡은 이미지의 '농협'이, 최근 처럼 금융시장에서 주목 받았던 적은 없었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때만 해도 코웃음을 쳤는데, 정말로 합병에 성공해 'NH투자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올들어 도심에 미래형 복합금융점포를 열더니 며칠 전에는 '올셋펀드'라는 상품을 팔겠다고 전국의 NH농협은행 점포에서 우수고객 초청 설명회를 열었다. '올셋(Allset)'이라는, 제법 세련된 대표 브랜드를 만든 것도 농협답지 않은 일인데, 시군지부에서까지 VIP고객을 공략하겠다고 깃발을 들다니, 그야말로 '뜻밖'의 일이 벌어진 셈이다. 김희석씨를 금융지주사 CIO로 뽑을 때만 해도 '뭘 좀 해보려나' 했는데, 이제는 자산운용 비즈니스를 NH금융그룹의 핵심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이 '어쩌면 될 것도 같다'는 현실감으로 와 닿는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임종룡 회장이다. 장관(국무총리실장)을 했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3인자 회장'(중앙회장과 전무보다 하위)이라는 특이한 위상의 NH금융지주 회장 자리로 온 게 1년 8개월 전이다. 바꿔 말하면 난삽했던 조직분위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벌여 직원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임회장은 실제로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NH금융을 움직인 중요한 트리거는 우리투자증권이었다. 그는 금융을 모르는 이들을 일일히 설득해 상위조직(중앙회)을 움직였다. 김원규 사장을 절묘한 시기에 내정한 것도, 머리 좋은 옛 우투맨들의 신뢰를 끌어내 잡음없이 통합법인을 출범시킨 것도 그의 몫으로 볼 수 있다. 관료시절 쌓아둔 인적 자산과 정무적 감각이 금융그룹 수장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큰 도움이 됐다. 그 시기에 우리투자증권이 매물로 나온 건 그의 능력과 별개이니, 운의 흐름도 그와 NH금융의 편이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그는 옛 회장들과 달랐다. 직원들의 말을 세심히 들었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NH 깊숙히 숨어있던 금융 유전자를 깨우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NH금융그룹은 마침내 화려하게 변신해 금융시장의 유망주로 탄탄대로를 걷게 될까. 그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NH금융은 지금 어느 때 보다 큰 위험에 노출돼있다. 임회장의 임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무대가 열리고 극을 시작했는데, 대체하기 어려운 주인공이 무대에서 내려올 시간이 된 것이다. 회장이 바뀐다면 NH금융이 어떤 방향으로 갈 지 종잡기 어렵다. 임회장이 '낙하산'인 것 처럼, 다음 회장도 낙하산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회장이 '시장'에 발을 담궈 치열하게 부딪치는 걸 싫어한다면? 자산운용이고 뭐고 그저 편안하게 가자고 한다면? 전략적 지향이 같은 쪽이라고 해도, 그 정도 능력이 안된다면?



물론 임회장이 연임할 경우 NH금융은 상당한 시간을 벌어 보다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회장 자리에 욕심 내고 있는 인물들의 의지와 정권이 그들에게 지고 있는 정치적 채무의 크기, 중앙회의 의중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인사 방정식을 지금 풀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임회장에게 다른 기회가 올 경우 그 스스로가 이 골치 아픈 NH금융 회장 자리를 내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NH금융의 변신은 시작과 함께 기로에 놓인 셈이다. 회장 한 사람이 그 큰 덩치의 금융그룹을 망가뜨린 사례가 너무 잦았다. 불확실하고 불합리한 인사 시스템을 당장 바꿀수도 없고,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왜 벌였느냐고 임회장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NH금융의 운이 어디까지 닿을지 지켜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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