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재벌로 산다는 것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4.12.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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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과연 그들은 행복한가, 또는 행복할 가능성이 보통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가. 오래 전부터 답은 '아니오'였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유한 부(富)의 크기가 커지면 그걸 지키는 일은 점차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재벌은 그 소유분이 거대기업으로 확장돼, 그 안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게 된다. 종국에는 자신의 소유가 사회와 국가의 이익에 작용하기에 이른다. 그걸 지키고 키워야 하는데,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용케 키워내면 탐욕과 부도덕이 들춰지고, 주저앉으면 무능과 나태를 질타당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기꾼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잠시 방심하면 흡혈귀처럼 송곳니를 박아 재산을 빨아댈 것 같은 의심. 어떨 땐 모두가 도둑놈으로 보이니,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좋아할 수도 없다. 행복은 그 사기꾼, 흡혈귀, 도둑놈으로 둘러싸인 벽 뒤쪽에 놓여있다. 참으로 닿기 어렵다.



엄청난 재력은 그들이 많은 걸 누릴 수 있도록 해줄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사소하게 누릴 것이 거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심수봉이나 유리상자 또는 컬투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몇 달간 끌어안고 다닐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큰 마음 먹고 호텔 뷔페를 예약하면, 아침부터 굶으면서 행복해 한다. 재벌들이, 또는 그들을 부모로 둔 2세들이, 이 정도의 행복감에 취하려면 어떤 이벤트가 필요한 걸까. 대개의 사람들이 10만원을 소비해서 맛볼 수 있는 만족을 재벌들이 느끼는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나 될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형편없이 비효율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질주가 시작되면 그 비효율은 점점 심해진다. 그 정점에 사치와 향락을 넘어선 '부도덕한 소비'가 있다. 그걸 피하고 싶어도 한번 빠져들면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그 정도의 절제와 겸손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혼자 하려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 부모 형제와 친인척들, 친구들까지도 함께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부(富)의 창살로 만든 감옥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이 부리는 사람들은 때로 간과 쓸개를 빼줄 듯이 그들에게 조아리지만, 결국 창살 밖에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손짓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고 한다면, 그건 치명적인 착시다. 그럴수록 그 감옥의 창살은 질기고 두터워지며, 그렇게 쌓은 원(怨)과 한(恨)은 자신의 등을 찌를 비수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재벌로 살면서 행복해지려면 비범한 덕목이 요구된다. 자신이 일궜거나 물려받은 부를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그 첫번째다. 그제서야 그는 겸손해지고, 절제하게 되며, 믿고 좋아할 사람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게 어찌 쉬운 일일까. 재산을 빌미로 피붙이 간에도 진흙탕 개싸움이 횡행하는데, 기왕 제 몫이 된 부를 사회와 공유한다는 게 말처럼 될 리 없다. 세상에 존경 받는 부자가 많지 않은 건 당연하다.

재벌이 부럽지 않다. 부의 담벼락 뒤에서 여전히 갈등하는 그들의 삶이 무거워 보인다. 그 중에는 격에 맞지 않는 재물로 삶을 망친 경우도 허다하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항공재벌의 여식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어이가 없더니, 마흔 나이에도 그 정도 정신 수준에 머물게 된 그 삶의 내력이 측은하다. 돈 몇 푼 더 있다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재벌까지는 아니다. 평범한 인생들이 그들의 고함과 기침에 가슴 쓸어 내리며 살아야 하는 게 서글프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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