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영어 스트레스로 자살한 회사원…업무상 재해"

머니투데이 김미애 기자 2015.0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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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실력에 부담을 느껴 해외파견 근무를 포기하고 스트레스를 받다 자살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업무와 사망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해외파견 및 부족한 영어실력과 관련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 등의 증세를 보였고, A씨의 해외파견을 철회하기로 회사 내부의 방침이 정해진 이후 향후 발생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업무 스트레스가 지속돼 우울증세가 심각했다"고 봤다.



이어 "업무 스트레스가 A씨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 A씨를 둘러싼 주위상황, 본사 건물 옥상에서 동료직원과 대화하던 중 투신한 상황에 비춰볼 때, 업무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A씨가 자살을 선택할만한 동기나 될 만한 다른 사유는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런데도 원심은 A씨의 우울증세 악화로 인한 자살의 가능성과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다른 사정들이 있는지, 자살 전후 A씨의 구체적인 언행 등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동기 등에 관해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채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D사의 토목설계팀에서 근무해온 A씨는 쿠웨이트 한 플랜트 공사의 시공팀장으로 임명됐으나 2008년 10월 열흘간 쿠웨이트에 공사현장에 출장을 다녀온 이후 자신의 영어실력이 시공팀장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꼈고, 스트레스를 받다 파견 근무를 포기했다.

이후 그는 서울 본사로 발령받았지만 "영어를 못해 해외파견도 못나가는데 부하직원들 앞에 어떻게 서야 될지 모르겠다"라고 가족에게 말할 정도로 자책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2월 본사 10층 옥상에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건물 아래로 뛰어내려 숨졌다.

이에 A씨의 아내는 2010년 5월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앞서 1·2심은 "A씨가 해외에서 담당하기로 한 내용이 통상적 업무에 비춰 과중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사망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사망할 무렵 회사에서 A씨를 해외에 파견하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그러한 부담감은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동료들에게 뛰어내리기 전 '미안하다'고 말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심신상실 상태 등에 빠져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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