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스톡홀름신드롬' 대처로 생존"…안산 인질극 전말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5.01.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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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협상가가 밝힌 인질극 전말…"큰딸, 잘 대응해줘 대견"

안산 인질극 피의자인 김모(47)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경찰서에서 영장 실질검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피의자는 지난 13일 두 딸과 딸의 친구 1명, 부인의 전남편을 가정집에 두고 인질극을 벌였으며 전남편과 딸 1명을 살해했다./사진=뉴스1안산 인질극 피의자인 김모(47)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경찰서에서 영장 실질검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피의자는 지난 13일 두 딸과 딸의 친구 1명, 부인의 전남편을 가정집에 두고 인질극을 벌였으며 전남편과 딸 1명을 살해했다./사진=뉴스1


"엄마 그러면 안돼. 엄마가 잘못했네."

5시간여 경찰 대치 끝에 사망자 2명을 남기고 끝난 경기 안산 인질극. 생존한 큰 딸은 생명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당시 인질범과의 협상을 지휘했던 이종화 경찰대 교수(인질 협상 전문가)는 15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큰 딸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인질범의 입장에 동조하고 이야기를 유도해 살해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질이 그를 구출하려는 경찰 등보다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심리현상은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 형태로 대치 상황에서 인질범에 저항하고 흥분을 보이는 것보다 인질이 무사할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큰딸이 평소 '삼촌'이라고 불렀던 엄마의 현 남편 김모씨(47)는 사건 일주일여 전부터 살해 협박을 해왔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종종 폭력을 휘둘렀던 김씨는 최근 아내와 별거하면서 이 같은 의심이 더욱 커졌다.



일주일여 전에는 아내를 직접 찾아가 "내게 돌아오지 않으면 살해하겠다"며 허벅지를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 아내는 병원 응급치료까지 받았다.

지난 12일, 김씨는 아내가 계속해서 자신의 전화를 수신거부하고 피하자 아내의 전 남편 박모씨(47)의 집으로 향했다. 당시 집에 있던 박씨의 지인을 흉기로 위협하고 감금했다.

밤 9시, 김씨는 귀가한 박씨를 현관 앞에서 흉기로 처참하게 살해했다. 이후 집에 들어온 큰딸과 작은딸도 차례로 감금했다. 박씨의 지인과 두 딸들은 살해당한 아빠의 시신이 방치된 집에서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샜다.


이튿날인 13일에도 김씨는 아내와의 통화를 계속 시도했다. 큰 딸의 휴대전화로 아내와 연결된 김씨는 아내가 폭언을 퍼붓자 격분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다시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김씨는 오전 9시38분 큰 딸이 보는 앞에서 막내딸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목졸라 살해했다.

경찰이 아내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 남편과 막내딸은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아내를 협상에 직접 참가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김씨가 "죽는 꼴 보고 싶냐"며 아내를 바꿔주지 않으면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경찰의 지휘 하에 아내가 통화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씨는 큰 딸에 흉기를 겨누고 아내와 통화를 이어갔다. 이미 2명을 살해한 상태에서 절망에 빠진 김씨가 추가로 인질들을 살해할 가능성도 높았다. 이 때문에 경찰특공대가 즉각 진입해 김씨를 검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큰 딸은 생명을 위협받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엄마에 극도로 화가 난 인질범의 입장에서 "엄마 그러면 안돼. 엄마가 잘못했네" 하면서 김씨의 편을 들어줬다. 아빠와 동생이 살해된 모습을 목격한 상황에서도 큰 딸은 김씨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5시간여 대치 끝에 인질범은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자수하겠다는 의사도 보였다. 그러던 중 외부와의 통화가 중단됐고 인질들의 생명을 우려한 경찰특공대가 오후 2시26분쯤 즉각 집 안으로 진입해 김씨를 검거했다. 검거 당시 김씨는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했다.

이 교수는 "인질극이 종료되고 무사히 구출된 큰딸이 너무 측은해 등을 토닥여줬다"며 "너무 큰 충격에 실어증 증세까지 보여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심리치료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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