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넓지만 얕은 지식’에 대한 놀라운 반응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5.01.17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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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넓지만 얕은 지식’에 대한 놀라운 반응


“Z씨는 스무 살의 건강한 청년이다. Z씨의 마을에는 열 명의 병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나 질병이 모두 다르다. 이들은 생명이 위독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다양하다. 어느 날 병자들은 자신들이 완치될 수 있는 의학적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Z씨의 장기를 빼내어서 이식하면 열 명 모두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Z씨는 죽겠지만 말이다. 마을 주민들이 Z씨를 찾아가서 말했다. ‘네 장기 떼러 왔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한빛미디어)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설명할 때 나오는 예화다. 이 책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의 ‘현실 세계’의 거대한 다섯 과정을 마치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야기 속에 인명, 지명, 책이름, 연도는 최대한 배제된다. 세어보니 열 번도 나오지 않는다. 줄거리만 파악하기 위함이니 사실 세부적인 팩트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보면 가장 기초적인 개념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2003년에 ‘21세기 지식키워드 100’과 ‘21세기 문화키워드 100’이라는 책을 기획한 바 있다.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개념어를 압축해 설명하고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했다. 그 책은 단편적이었지만 이 책은 그런 키워드를 하나로 연결해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러니 술술 읽힌다. 저자는 “우리는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 여행을 하고 있다. 교양을 넓지만 얕은 지식이다. 넓고 얕은 지식은 의사소통의 기본 전제가 되고,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게 하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연재를 글로 풀어낸 것이다. 태초에 책은 말을 기초로 씌어졌다. 우치누마 신타로가 ‘책의 역습’에서 밝혔듯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 이래로 말로 하는 회화(會話)와 텍스트와의 관계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더구나 스마트 기기로 책을 읽는 일이 늘어나면서 ‘말’이 책이 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직까지는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배려해 ‘읽는’ 책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곧 ‘말(음성)’ 자체를 잘게 쪼개 책이라고 일컫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단 한 줄도 소개된 바가 없는 ‘지대넓얕’은 보름 만에 4만 부나 팔렸다.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처음 사본다거나 5년 만에 책을 사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프트 인문학 서적들이 대거 출간됐지만 내용까지 소프트한 책은 많지 않았다. 진정으로 ‘넓고 얕은 지식’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다니 이 책의 확장성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현실 너머’의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등 다섯 과정을 다룬 2권이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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