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전망 "잘못 했습니다"…반성문 쓰는 증권사들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김은령 기자, 최민지 기자 2015.01.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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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이 새해 들어 일주일 만에 "2015년 증시전망을 잘못했다"며 씁쓸한 반성문을 쓰고 있다. 증권사들은 올해 코스피지수의 저점을 '1800후반~1900초반'으로 예상했는데, 이미 1900은 깨졌고 최근에는 1880선 밑으로 내려갈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잘못을 인정, 공식적으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다른 곳들도 수정전망을 내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신한금융퉂, 하나대투증권은 수정 전망치 *신한금융퉂, 하나대투증권은 수정 전망치


리서치센터들의 전망수정은 늘상 있는 일이나, 새해벽두부터 스탠스가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국증시 패러다임'을 바꿀법한 큰 이슈들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는 전날 '거위사안(居危思安)'이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연간 지수전망 밴드를 종전 1870~2260에서 1810~2200으로 하향조정했다.



거위사안은 거안사위(居安思危-일이 평온하게 풀릴 때에도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라는 고사성어를 뒤집은 말로 "위태로울 때 안락함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코스피 시장이 최근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반등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았다"는 게 신한금융투자의 설명이다. 반등에 대한 '전망' 대신 '기대'라는 어휘를 택했으니 얼마나 고심이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이어 이날 하나대투증권은 연간 코스피 지수 예상치를 1880~2200에서 1830~2150으로 낮췄고,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도 조만간 수정전망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수하단으로 1880을 예상한 대신증권, 1920을 제시한 이트레이드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만 그런 건 아니다. 메릴린치는 올해 코스피지수를 1900~2050선으로 예상했고 긍정적인 시나리오로는 2200~2400선까지 봤다. 골드만삭스는 1900~2300, 맥쿼리는 2050선을 목표지수로 들었다.

증시전망은 말 그대로 저점과 고점을 정확히 '예상'하기보다, 이를 염두에 둔 투자전략을 짜야한다는 의미가 크다. 전망이 틀리거나 방향을 바꿨다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특히 올해는 밤잠을 못 이루겠다"고 털어놓는 리서치센터장들이 속출하는 등 스트레스 강도가 크다. 여기에는 올해 한국증시 패러다임을 바꿀 '빅 이슈'에 대한 분석에 실수가 있었다는 속사정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한국증시를 둘러싼 여건변화 가운데 리서치센터들의 판단이 잘못됐던 것은 △기업실적의 분석 △한국을 대체하는 신흥증시의 부상 △배당확대 이슈 등이 꼽힌다.

가장 문제가 컸던 것은 실적분석에 낀 '거품'이었다. 연초 증시는 지난해 4분기 기업들의 실적과 연관성이 큰데, 증권사들이 상장사 전체 순이익을 실제보다 최소 50%, 최대 100%까지 부풀려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컨센서스를 분석한 결과, 증권업계가 코스피 상장사들의 전년 4분기 순이익을 20조원 정도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최근 3년간 평균은 11조6000억원 가량이었고, 이번에는 경기가 좋지 않아 수치가 더 낮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한국기업의 특징은 4분기마다 어닝쇼크가 난다는 점"이라며 "4분기에는 각종 인센티브, 감가상각 등 비용을 많이 털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망과 실제 수치에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올해 코스피지수 수정전망과 관련해 '과대추정 실적 컨센서스'가 있었다는 점을 자인했다.

기업들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반으로 한 4분기 영업이익 마진율은 6.1%인데, 이를 뜯어봤더니 경제 활황기인 2000년대 중반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부풀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이 같은 마진율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게 이 증권사의 최종 판단이다.

과거에는 4분기 실적전망이 틀려도 시장이 크게 밀리지 않았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며 기업들의 1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이를 희석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 주가가 오른다는 이른바 '연초 효과'다.

그러나 시장은 예전과 달리 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올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했고, 여기에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며 시장급락을 막을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적추정 오류에 대해 리서치센터 잘못만 묻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일단 기업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나오지 않고, IR담당자나 기관투자자도 장밋빛 전망만 원한다"며 "그러다 보니 개별기업별로 실적추정치가 부풀려지고, 이게 리서치센터에 취합되며 전체 추정치에 오차가 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연초증시를 잘못 전망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돈으로 하루 150조~200조원의 주식이 거래된다는 중국과 일본 등 대체증시의 호황이다. 한국에 머물던 외국인 자금이 이 시장으로 이탈할 가능성은 예상했으나, 이정도로 가파르게 속도가 빨라질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증시의 '호재'라 여겨졌던 '배당확대'도 리서치센터들의 분석을 엇나가게 한 측면이 있다. 이는 '짠물배당'으로 오명이 높은 한국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할 것으로 봤으나, 연말 배당수익을 노린 단기자금의 유출입이 생기며 오히려 연초 증시수급을 꼬이게 한 악재가 됐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하반기에서 올해 상반기는 투자자 뿐 아니라 시장 전문가들도 처음 겪고 접하는 여건변화가 컸다"며 "방향을 잘못 분석했거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들이 많아 전망에 잘못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연말 증시에 데뷔한 제일모직과 삼성에스디에스도 리서치센터들의 분석을 어렵게 한 변수였다. 이들의 등장으로 저점판단의 기준이 되는 상장기업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변화했는데, 이런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통상 자산가치와 시가총액이 동일해지는 PBR 1배를 지수저점으로 잡는다. 예전에는 코스피 지수기준 1910선이 PBR 1배에 해당했는데 제일모직과 삼성SDS를 반영하면 1850선으로 낮아진다.

이런 변수들의 복합작용으로 주가가 예상보다 많이 떨어졌고, 당분간 지지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코스피지수가 심리적 지지선인 PBR 1배 수준을 하회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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