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구룡마을 개발 합의됐다지만…"앞으로가 더 걱정"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2014.12.2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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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공무원 배제·토지주 인정유무 등 이견
- "법적문제 미해결한 채 추진…주민 분열 우려"


지난 9일 화재가 난 후 폐허가 된 구룡마을 모습.지난 9일 화재가 난 후 폐허가 된 구룡마을 모습.


화재로 집을 잃은 구룡마을 거주민들이 임시거처로 주민자치회관에서 지내고있다.화재로 집을 잃은 구룡마을 거주민들이 임시거처로 주민자치회관에서 지내고있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사업을 수용방식으로 재추진한다고 발표한 지난 18일. 개발 기대감에 들떠 있을 줄 알았던 구룡마을 주민들은 오히려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서울시와 강남구는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구룡마을 토지주들에게 땅이 아닌 현금으로 보상하는 전면 수용방식으로 개발을 재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구룡마을 토지주들에게 개발된 땅으로 보상하는 환지방식과 수용방식을 혼용할 것을 주장한 반면 강남구는 현금으로만 보상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지난 8월 재개발사업 구역지정이 해제됐다.



표면적으로는 극적합의를 도출한 것 같지만 강남구가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검찰고발을 취하하지 않기로 해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겨뒀다. 주민들은 언제든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며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민자치회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사업 재추진 발표 이후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라며 "주민들을 위한 진정성은 보이지 않고 '보여주기식' 합의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구룡마을 개발에 서울시 공무원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대목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른 주민은 "신 구청장이 오랜 시간 이 일에 매달려온 서울시 공무원을 배제한다는 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라며 "서울시장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구청장이 주민자치회 주민 400여명을 '가짜 토지주'로 언급한 데서는 분통을 터뜨렸다.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은 "강남구청이 우리를 토지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토지세 고지서를 발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토지주도 서울시와 강남구의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임무열 토지주협의회장은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강남구의 개발안을 받아들인 것 외에는 아무 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자기들끼리만 합의하고 정작 토지주와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서울시와 강남구를 동시에 비난했다.

그는 또 "감사원 감사보고서가 그렇게 중요하고 논란이 되면 그 보고서를 갖고 전문가 토론회를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영만 마을자치회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돼 매우 기쁘다"며 "결국 이렇게 될 것을 환지방식을 집어넣는 바람에 3년을 허송세월한 게 한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서울시와 강남구가 온전히 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주민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 주민은 "서울시와 강남구가 기싸움을 벌이는 통에 주민들이 사분오열되는 아픔을 겪었다"며 "여전히 법적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업을 추진하겠다니 주민끼리 다툼이 더 가열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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