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부장님의 초등학생 딸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게 일상이 됐네요. 처음엔 미안해 하시더니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시네요. 부서업무도 익숙하지 않고 주말도 반납하고 일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제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1년 전 저와 부장님이 함께 지방출장 갔을 때부터였죠. 주말을 끼고 간 출장에 부장님은 딸을 데려오셨죠. 부장님은 "딸의 현장학습을 위해 출장에 데려왔다"고 말씀하셨죠. 혼자 딸을 키우는데도 딸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모습에 부장님이 진정 '슈퍼맨'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후 어떤 주말엔 집에서 쉬는 저를 집으로 놀러오라고 전화하셨죠.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한다는 말과 함께요. 그 말을 반신반의하며 저는 부장님 집에 갔고 직접 점심도 차려주셨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는 다시는 부장님 집에 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그 다짐도 오래가지 못했죠. "왜 집에 놀러 오지 않냐" "딸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데 내 애가 싫으냐"며 트집을 잡으셨죠. 그후 부장님은 "마음씨 나쁜 애들이 일도 못한다"며 화까지 내셨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님은 저에게 "이번 주말에 집에 꼭 놀러와"라고 하셨죠. 저는 "주말까지 해결해야 할 업무가 있어 힘들다"고 대답했는데 부장님은 "왜 2년차밖에 안 된 애한테 일을 다 시키냐"며 선배들에게 한소리씩 하시곤 제 업무를 그분들에게 넘기셨죠. 일이 줄기는 커녕 마음만 무거웠고 결국 선배들한테 "부장한테 잘 보여 좋겠다" "부장이 왜 너를 그렇게 챙기냐"며 핀잔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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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애를 잘 봐서요"라고 답하진 못하겠더라구요. 이후 부장님은 주말에 제가 딸아이를 돌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하셨죠. 이젠 부장님이 김장이나 이사 등 집안일에까지 저를 부르시네요.
최근 한 업체에서 '대한민국 직장인, 얄미운 상사 골탕먹이는 방법'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 성의 없게 인사하기 △2위 회식 때 상사의 개인카드 긁도록 분위기 유도하기 △3위 상사 지시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 못 알아들은 척하기 △4위 주위사람이 상사를 칭찬하면 은근히 단점 꼬집기 △5위 중요한 말이나 사안을 전달하지 않기 △6위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척 상사 무안주기 등이 뽑혔네요.
저는 이런 방법을 다 동원해 부장님을 골탕먹이고 싶네요. 제 얘길 들은 지인들은 "왜 회사 다니냐. 부장한테 업무와 관련 없는 일 계속 시키면 회사 감사실에 보고하겠다"고 강하게 의사를 표시하라네요. 부장님, 저는 지금 육아가 아닌 회사업무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저는 베이비시터가 아닌 한 회사의 직원이며 당신 밑에서 일 잘하는 후배로 평가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