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도산법원 탁상 공론에 기업들이 쓰러져 간다

머니투데이 김미애 기자 2014.10.2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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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도산법원 탁상 공론에 기업들이 쓰러져 간다


"사건 수는 갈수록 느는데 전문법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요. 회생·파산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준비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이날 사석에서 만난 법원 관계자들의 목소리에서 절실함이 묻어났다. 도산사건의 국내 실체 처리현황을 설명하는 동안 절심함은 더해갔다.



파산사건을 관할하는 전문 법원 설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법인 파산 건수는 2009년 226건, 2010년 254건으로 증가하다가 2011년엔 300건을 넘겼다. 지난해 파산한 기업 수는 461건으로 역대 최대치다.

2008년 4만7873건이던 개인회생 신청 사건도 2011년 6만5171건. 2012년 9만368건, 지난해 10만588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도산법원 설치를 더 이상 미루었다가는 날로 복잡해지고 급증하는 사건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로는 그 역할에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지적이다.

국제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GM 등 유수의 기업들이 살아난 데에는 파산법원의 역할이 컸다. 미국 정부가 파산법원의 감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GM 등을 구제하려 했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학자들과 파산전문 변호사들이 도산법원 설립의 당위성을 오래 전부터 강변해왔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난 7월에는 도산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산전문 법원 설치를 위한 심포지엄까지 열렸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때뿐이었다. 국정감사장에서도 늘어나는 도산사건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정작 근거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는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는 사이 파산사건을 받고 있는 법원의 사정은 심각하게 돌아간다. 도산사건 담당 법관 대부분이 사전 경험과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그나마 일을 할만 하면 다른 분야로 전출을 간다. 공백과 공회전의 연속이다.

최대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마저 민사와 형사, 파산 사건을 모두 맡고 있기 때문에 사건처리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

파산과 회생 등 도산 절차는 사회적 수술이다. 즉 치료와 재활 기능이 목적이다. 곳곳에서 쓰러져 가는 기업과 개인 채무자들이 넘쳐나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방관은 위험하다. 도산법원의 설립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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