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R&D, 매출보다 창의성이다

테크앤비욘드 김창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평가단단장 2014.10.23 15:06
글자크기
김창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단평가단 단장김창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단평가단 단장


유사 이래 기술은 부국강병의 지름길로 여겨져 왔다.
18세기 후반 정약용 등 실학파와 이를 이은 19세기 후반 김옥균 등의 개화파도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의 장려를 주장했다. 과거 제국을 건설하며 전 세계를 장악하려 한 서구열강들의 국력은 기술력 확보가 관건이라는 것이 산업혁명 이후 역사에 반증된바 있다. 이처럼 기술과 국가경쟁력은 불가분의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제품과 기술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미 10여년 전 디지털 가전의 범용화(commodification) 진행 현상에 대해 지적한 국내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같이 전 세계적 기술수준 평준화와 기술의 범용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결과 비슷한 기술수준의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범용화·평준화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성장동력 상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하여 최근 4~5년 전부터 산·학·연·관 모든 분야에서 산업간 또는 기술간 융합을 통해 기술혁신과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간 또는 산업간 융합을 통한 혁신을 넘어 기술·인문사회간 융합을 통한 혁신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한다. 잘 알려져 있듯 애플은 신기술보다는 기능적·감성적 디자인과 새로운 서비스모델 개발을 통해 휴대전화 시장에서 모토로라, 삼성, 노키아 등의 기업보다 후발주자였지만 세계시장 선두권에 진입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의 교차로에 애플이 서있다”고 말했다.
창조경제에서도 고전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최근 정부가 기술 위주 접근뿐만 아니라 철학과 인문·사회학적 접근이 필요한 국민편익증진기술개발사업(Quality of Life Technology Program), 사회문제해결형기술개발사업, 서비스연구개발사업 등에 집중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인문간 융합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술자·공학자와 인문·사회학자 간의 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대다수 민간 또는 국가 연구개발(R&D)이 여전히 그 산출물을 기술고도화 또는 기업의 매출 증대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보다 빠른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창의적 기업가정신을 통해 기존 기술 고도화와 특허 획득 위주의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서비스, 디자인 및 인문학적 감성이 녹아든 제품을 개발한다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중소기업이 기술과 인문·사회 융합을 통한 명품 R&D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국가연구개발 과제의 기획, 선정, 수행과정에서 인문·사회학자 또는 기술의 수요자인 민간인의 참여와 아이디어 수렴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우물만 파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물에도 정수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 산업간, 기술간, 문화간 교류와 융합을 통한 명품 두레박이 우리 중소기업을 통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