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거주 학생 수백명 거리로 내쫓긴 사연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4.10.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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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주변 '불법건축물' 기승…처벌과 후속 관리가 더 시급

@임종철@임종철


#고려대학교 공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씨(24)는 지난해 제대하고 학교 근처인 서울 제기동역 부근에 전용면적 19㎡짜리 원룸을 보증금 100만원에 월 45만원을 내고 거주해왔다. 인근 시세에 비해 월세가 저렴했고 무엇보다 학교와 가까워서 좋았다.

그런데 올 7월 갑자기 집주인이 찾아와 리모델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만 방을 비워야 한다고 했다. 당장 머물 곳이 없었지만 리모델링 후에도 월세를 더 올리지 않는다는 집주인의 말에 친구 집을 전전하며 겨우 참고 지냈다.



하지만 리모델링 후 돌아온 원룸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바뀌었고 도배만 새로 했을 뿐이다. 심지어 형광등 위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였다.

집주인이 왜 리모델링을 핑계로 집을 비우게 했는지는 다시 원룸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소방서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점검을 위해 소방단속을 실시했는데 해당 건물이 원래 고시원 건물이어서 취사시설을 설치할 수 없었고 결국 집주인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잠시 취사시설을 뜯어냈던 것이다.



김씨는 "인근에 거주하는 같은 과 동기들도 똑같은 일을 당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며 "불법건축물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뭔가 찜찜해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학교 주변에서 그만한 월셋집 찾기가 녹록지 않다"고 푸념했다.

대학가 주변 고시원이나 다가구주택을 원룸처럼 개조해 불법으로 용도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단속은 수월치 않다.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불법 개조한 부분을 일시적으로 원상복구한 후 다시 원룸으로 임대해도 추후 단속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세들어 살고 있는 애꿎은 대학생들만 피해를 입는다. 대학가 주변 임대소득을 올리기 위한 '불법건축물'의 실태파악과 단속도 중요하지만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해 불법 용도변경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단속 후 조치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수개월 전 불법 개조 원룸이 밀집한 한 대학가 인근에 비상이 걸렸다. 많은 건물주가 건물용도를 고시원으로 신고한 뒤 원룸으로 개조해 운영하다 해당 구청에서 불법 원룸 단속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당시 건물주들은 각 방에 설치된 싱크대와 가스·전기레인지 등 불법시설을 부랴부랴 철거하느라 대학생 수백 명이 거리로 나 앉게 됐다. 하지만 점검을 통과한 후에는 다시 원룸으로 임대했다.

한 대학생은 "구청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다수의 불법 원룸을 적발,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원룸 주인들은 대부분 싱크대를 뜯고 사진을 찍어 시정 조치한 것처럼 보고한 후 다시 장착해 임대하는 등 구청 직원들과 원룸 주인들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고 귀띔했다.

서울의 일부 대학가는 이렇게 불법으로 용도 변경한 원룸이 전체의 절반을 웃돌 것이라고 업계는 추정한다. 정부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보니 건축주들도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단속에 걸려 불법건축물로 적발되더라도 처벌은 시정조치나 이행 강제금에 그친다.

심지어 시정조치가 내려지면 단속된 건물을 포토샵으로 조작하거나 개조 전 사진을 이용해 원상 복구한 것처럼 허위서류를 작성해 보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불법건축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무원 인력 부족 등으로 주택 하나하나의 불법 여부를 확인하긴 어렵다"면서도 "불법개조로 한 번 단속되면 집중적으로 단속하거나 이행 강제금을 대폭 올리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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