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가득 찬 음식물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아파트 경비원 박희봉씨(가명·58)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찬이슬을 맞으며 서울 근교 집을 나선다. 먹고 살려면 두 시간 넘는 출근길도 마다할 수 없다. 아침 6시 반까지 아파트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꼬박 24시간을 근무하고 받는 돈은 131만원 남짓. 재활용 분리수거부터 각종 민원처리까지 일은 끝이 없는데, 새벽에 잠시 졸기라도 하면 '졸지 마라' 새파랗게 어린 주민들 타박과 훈계에 설움이 북받친다.
박씨는 자녀 둘과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곧 이런저런 사업을 시작했지만 손해만 봤다. 결국 택시회사에 취직해 배차업무를 시작했다. 매일 수많은 기사들과 부딪히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월 200여만원을 받고 10년을 버틴 박씨는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혀 퇴사하고 말았다. 그 후 박씨는 8개월째 경비원으로 살고 있다. 58세에 달리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람들이랑 부딪히는 게 체면 상해서 공사장으로 왔다"며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경비 외에 크게 없다. 치매가 아닌 이상 노인 대부분은 100만원짜리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기대수명은 길어지는데 마땅한 노년 일자리가 없다.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고학력과 경력을 막론하고 경비일과 청소일 등 사실상의 생계형 '알바'에 뛰어들고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일해야 하는데 할 게 없다"
한국의 중장년·노년층은 생계를 위해 황혼까지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지난 7월 통계청의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75세 고령층 인구(1137만8000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62%(705만2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가 '생계비 마련'(54%) 때문이다. 고령층은 72세까지 근로를 희망하지만 실제로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그만두는 연령은 만 49세로 나타났다. 은퇴 후 재취업이 '필수'인 것이다.
문제는 노년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높은데 일자리는 경비원이나 청소원, 주차관리인 등 질 낮은 임시직에 제한돼있다는 점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근로자의 61.85%가 임시직(OECD 가입국 평균 19.53%)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내일은 없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2014년 한눈에 보는 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 연령은 71.1세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늦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까지 일하지만 급격한 경제적 계층·자존감 하락으로 한국 노년의 사회생활은 윤택하지 않다.
경비원 박희봉씨에겐 평균수명인 80세까지 22년이 남았다. 하지만 박씨에겐 삶의 의미도, 낙도 없다. 박씨는 "젊어서는 자녀 교육에 투자하고 50평짜리 전원주택과 부동산을 사들이며 노후 대비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처분하고 달랑 작은 아파트 하나 남았고 그마저도 시세가 폭락해 팔지 못하고 있다"며 "연금도 없어 기댈 곳이 없다"고 했다. 이어 "한창 땐 등산이나 여가, 사교활동도 즐겼다. 경찰서 자문위원,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지금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완전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고용노동부나 구청 등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아 보이지만 허수가 많고 괜찮은 소수의 일자리는 경쟁이 심하다"며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빈곤문제다. 빈곤이 해결되면 역할상실, 고독감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해결되는 만큼 국가와 기업은 연령차별을 줄이고 질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