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김씨의 다음 스터디는 오전 9시 ‘출석체크 스터디’(도서관 앞에 모여 출석여부 확인). 이후에도 점심·저녁 ‘밥터디’(함께 밥을 먹는 모임), 밤 10시 ‘퇴근체크 스터디’(귀가 전 도서관 앞에 모여 명단확인) 등 총 9개의 스터디에 하루 종일 참여한다. 하루 중 10시간 가량을 스터디에 투자하고 있다.
모집하는 스터디 참여자는 다양하다. 출석과 퇴근을 확인하고 함께 밥을 먹는 '생활스터디', 어학·자기소개서·면접 등에 관련한 '기업스터디'는 기본이다. 멘탈트레이닝 스터디(토론 등을 대비한 자신감 강화훈련 모임), 스토리텔링 스터디(기업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모임) 등도 인기다.
김씨는 "스터디가 정보공유, 동기부여 등 좋은 면도 있지만 하루 종일 스터디에만 묶여 있다 보면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하는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다"며 "스터디가 개인의 고유한 역량을 키워주기보단 다양한 경험을 저해하고 획일화된 인재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준생 정유리씨(24·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루 4개의 취업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정씨는 스터디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무 관련 역량을 키우는 데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다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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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매일 4~5개씩 스터디만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며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고 할 엄두도 안 난다"고 푸념했다.
본래 스터디는 취준생이 아닌 고시 혹은 자격증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취업전쟁'이 살벌하지 않았던 1990년대초만해도 취업스터디는 생소했다. 최근처럼 학생들이 하루 종일 스터디에 목매는 경우도 없었다.
취업정보전문업체 '잡코리아'의 정주희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점차 취업이 고시화되면서 수험판에서나 성행하던 스터디가 취업분야로 넘어오게 됐다"며 "최근 취업을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워낙 많은데 그것을 개인이 혼자서 단기간에 준비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거세지는 취업스터디 열풍이 20대 청년들의 '기회'를 뺏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획일화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나는 것.
진성미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스터디는 인성이나 리더십 같은 실질적인 직무역량을 키우는 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취업준비생들이 지나치게 스터디에만 몰두하다 보면 모두가 형식적인 인재에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향후 직장생활을 위해 스터디보다는 유·무형의 실제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