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설문조사 대상 100명을 전원 '두산팬'으로 채우기로 말이다. 두산팬인 내 주위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엄선해 설문지를 돌렸다. 훗, LG나 넥센을 좋아하다니…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타' 중에는 "아버지를 따라 SK 응원석에 앉았는데 이유 없이 상대편 두산이 끌렸다"라는 응답이 눈에 띈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두산의 '호갱' 한 명을 늘려준 모양이다. "우루사를 좋아해서"…이건 또 뭔가 ㅡ_ㅡ; 그 곰과 이 곰이 아마도 같은 뿌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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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마스코트 엠블럼(왼쪽)과 1996년 8월 우루사 인쇄 광고(오른쪽)
어린 시절부터 LG를 좋아한 원죄 때문에 DTD의 저주를 감수하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건 뭔가? '구단 성적' 때문에 LG를 좋아한다는 응답자 2명이 눈에 띈다. LG의 지난 10여년의 성적은 이른바 마법의 비밀번호 '6668587667' 로 대변된다. 그런데 성적 때문이라니…아마도 이 둘은 피학 성향의 '변태'가 아닐까 싶다. 절교를 고민해봐야겠다.
기타 응답에는 "어렸을 때 유니폼이 예뻐서"(가을 유광점퍼 아직 갖고 있나?), "초등학교 때 친구가 가지고 있던 LG트윈스 어린이 회원세트가 멋져 보여서"(미성년 약취 유인…)
두산 호갱팬 입장에서 두산의 유니폼에 비할 바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LG 유니폼 나름 예쁘다는 건 인정!
하긴 박병호와 강정호, 서건창과 밴헤켄 등 미친 존재감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두산 팬인 내가 봐도 탐난다.
슈퍼히어로가 변신하기 전 돌고래(태평양 돌핀스), 유니콘(현대 유니콘스)일 때부터 좋아했다는 응답자들이 4명이나 됐다. 이들은 혹시 팀이 연고를 옮길 때마다 이사라도 다닌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먼 사촌보다 바로 옆집에서 땅을 사면 더 배가 아픈 법이다. 넥센의 승승장구에 배가 아픈 두산 팬이 어디 나 뿐일까.
내려갈 팀은 내려가지만 성적이야 어찌됐든 '호갱'은 그 팀을 계속 응원한다. 묻지마 작전주에 투자한 뒤 비자발적 장기투자로 접어든 개미들처럼, "골이 깊을수록 산도 높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
'사심 설문조사'의 믿기 어려운 결과로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그들의 변명도 나름 수긍이 간다.
LG팬들은 "한 번도 연고를 옮기지 않은 LG야말로 진저한 서울 연고 팀"이라며 나를 배신자라 부르고, 넥센으로 옮겨 탄 친구는 "최대 관중수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성적으로 먼저 배신했다"고 항변한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호갱팬'인 나는 오늘도 두산 경기를 지켜볼 뿐이다. 이번 가을…배신 안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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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9월 8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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