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구분 폐지에 과학계 폭발…"통합하고 과학교육 축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4.09.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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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과학기술단체 '창조경제 시대의 미래인재양성교육 국민대토론회' 개최

창조경제 시대의 미래인재양성교육 국민대토론회/사진=KISTEP창조경제 시대의 미래인재양성교육 국민대토론회/사진=KISTEP


문·이과 구분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한 교육부의 국가교육과정 개정안이 과학기술계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쳤다. '교육과정 개정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게 이유다. 이번처럼 과기계가 교육과정 개정에 적극 관여하며, 목소리는 높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국가교육과정 개정 무엇이 문제?



3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등 11개 단체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기초과학학회협의체 주관으로 열린 '창조경제 시대의 미래인재양성교육 국민대토론회‘에서 미래 인재상 제시가 명확치 않고, 10명 정도로 소수인 '국가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회(이하 개정위)'의 섣부른 결정이 우려되는 현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때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의 필수교육시간은 각각 15단위(1단위는 학기당 17시간)이고, 체육·예술은 각각 10단위였다.



연구위원회 연구안을 보면 국어·영어·수학은 각각 12.25단위, 사회는 16단위(역사 포함), 과학·체육·예술은 각각 10단위다.

과학과목 교육 비중은 2009년에는 15.1%였으나 개정안의 비중은 10.8%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의 4과목으로 구성되는 만큼, 과목당 필수 교과시간은 2.5단위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최소한의 과학교육도 불가능한 상황이란 게 과기계 설명이다.

과기계는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취지는 이미 광범위하게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반드시 가르쳐야 할 과목'으로 과학은 현 '축소'보단 '강화'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교육부와 팽팽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과기계가 반발하자 각계 의견을 듣겠다며, 금새 입장을 바꿔 '국가교육과정개정 자문위원회'를 급조했으나, 자문위원회가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없는 구조인 데다 이는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라고 질타하며, 과기계는 사범계 출신들로만 구성된 개정위를 과학계와 산업계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 개정위 위원 11명은 교육학 전공자이며, 문과 성향 인사들이다.

정운찬 전 총리가 강연하고 있다/사진=KISTEP정운찬 전 총리가 강연하고 있다/사진=KISTEP
과기계는 정운찬 전 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를 내세워 자신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21세기는 모든 것이 과학기술로 해결되는 시대이며, 예컨대 과학 덕분에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질병과 같은 끔찍한 고통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인간의 삶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해준 과학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라며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를 높이려면 초중등학교의 모든 학생에게 충분한 과학 교육을 해야 한다"며 '옹호론'을 폈다.

이어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 대책위원 정진수 충북대 교수는 △현 교육과정 개정 작업의 중단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전면 개정 △사회적 합의에 이를 때까지 2009년 교육 과정 유지 등 과학기술계 3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정 교수는 "의미도 불명확하고 명분도 없는 현 개정안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저버릴 위험이 있다"며 "신임 교육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바 있는 5·31 교육개혁위원회 수준에 이르는 사회적 합의는 필수이고, 2013년 수시 개정안이 아닌 정상적 절차를 거친 마지막 교육과정 안인 2009년 안을 따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과학기술기본법'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교육의 다양화 및 질적 고도화에 대한 내용이 명시돼 있다"며 "미래부도 과학교육에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취지를 축사를 통해 간단히 설명했지만, 과기계와 정면 출동한 이번 사안에 관해선 구체적인 설명이나 대안에 관해 일체 언급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교육부 독단적 추진 반대" 잇딴 쓴소리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을 좌장으로 한 패널토론에서 윤정로 한국사회학회 회장(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인문학·사회과학이 우리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영역이었다면,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과학기술은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또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발전을 위해서 더 유능하고 더 많은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을 넘어서,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데 있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명환 기초과학학회협의체·대한수학회 회장(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2009년 교육과정을 교육부는 작년말 '수시개정'이란 제도를 이용해 국어와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각 15단위씩 필수로 하던 것을 모두 10단위로 줄이는 등 슬며시 바꿔버렸다"며 이는 전면개정에 버금가는 작업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올초 2015년 전면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가의 발전방향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에 따른 미래인재상이 무엇이고 작년말과 현재 진행중인 개정방향이 새로운 인재상을 길러내는데 어떻게 적합한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본 적 없다"고 부연했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장은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 생물학 이외의 수학과 화학 등에 대한 배경지식은 고등학교에서 얻은 것들이고, 타 분야를 이해하고 공동연구를 하는데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다"며 "앞으로 2.5단위의 과학교육으로 이십년 후의 세대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은 "지난 2013년 교육과정 수시개정은 교육부 주도하에 교육관계자 중심의 밀실, 졸속으로 추진되어 그 내용적 합리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마저 결여되었다"며 "이런 와중에 또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을 빌미로 독단적으로 2014년 수시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누구의 교육과정 개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교육부의 현 노선을 틀 것을 요청했다.

민경찬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장은 "이번 논란도 제한된 결정 주체, 단기적 안목과 추진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하며, "우리는 5년 단위 정부의 관점에서 결정했던 정책들이 많은 경우 지속되지 못했고, 이에 따른 엄청난 혼란과 손실을 가져왔던 지금까지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의사결정과정의 적합성과 교육과정 운영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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