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요즘 한 케이블TV에서 방송하고 있는 '마이 시크릿 호텔'의 내용은 내가 보기에는 과장된 측면이 거의 없어 보인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처럼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로비 라운지에서 우리가 제공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무료로 받아간 투숙객이 있었다. 3시간 후 그 고객은 다시 호텔로 돌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호텔에서 받아간 커피의 뚜껑에 이물질이 묻어있었다는 것이다. 그 고객은 이물질이 묻어있다는 문제의 커피 뚜껑조차 갖고 오지 않았다. 아무도 눈으로 보지 못한 일방적 주장이었다.
예약실에서 근무하는 내 동료는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예약 문의를 받다보면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만나고 싶다고 희롱하는 'X'들이 의외로 많다. 내 동료는 전화를 확 끊고 싶지만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회사 규정상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고 했다.
무조건 화부터 내는 고객도 부지기수다. 호텔리어 7년차로 내 상관인 매니저는 "3년 전부터 이유 없이 화부터 내는 고객들이 유난히 많다"고 토로했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고객들이 정황도 알아보지 않은 채 화부터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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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모두 고향으로 향하는 추석연휴에도 나는 정상 근무를 한다. 호텔은 공휴일이나 주말 근무가 당연하지만 추석 같은 명절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은 고통스럽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 같은 호텔리어의 숙명이다.
체크인·아웃이 몰리는 경우나 주말 점심·저녁식사 시간에는 고객들이 몰려 3~4시간씩 계속 서서 일해야 한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도 나는 계속 미소를 짓고 서 있어야 한다.
호텔에서 근무하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화려한 호텔에 어울리는 명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많다. 속이 뒤집힌다. 나 같은 호텔리어들은 거의 대부분 매 식사 때마다 호텔 지하의 직원 식당을 이용한다. 겉보기에만 화려하지 호텔리어는 연봉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 명품은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작은 보람도 있다. 때때로 고객이 평생친구가 돼 주기도 한다. 실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근무한 식음료 지배인은 한 고객의 맞선 자리부터, 데이트, 상견례까지 지켜봤고, 결혼 후 성장한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는 고객 부부와 지금까지도 아주 가깝게 지낸다.
가끔씩 40~80% 저렴한 가격으로 가족들을 호텔로 초대해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것도 호텔리어가 되길 잘했다고 느낄 때다. 나는 올해도 추석 연휴가 끝나고 비번이 올 때 부모님을 모시고 호텔에서 1박을 지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다. 커피 값에 택시비까지 요구하는 막무가내 손님도 가끔 등장하지만 그래도 나는 더 웃을 자신이 있다. 호텔리어는 나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