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라고? 난 '잡파'야" 최경환의 한마디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2014.08.1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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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의 브리핑룸]

“좌파 같지?”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을 논의할 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렇게 되물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직원들을 향해서다. 사실 그가 꺼낸 화두가 전통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 흐름에 맞춰 경제정책방향을 준비했던 기재부는 기존의 안을 버리고 백지를 다시 폈다. ‘확장적 재정 정책’은 그나마 예상 가늠했지만 가계소득 증대, 비정규직 문제 등은 ‘파격’에 가까웠다. “지도에 없는 길”이라는 자평도 같은 맥락이다.



기재부 관료들은 적잖게 당황했지만 실효성 여부를 떠나 정부가 던진 화두로는 충분히 신선했다. 그리고 몰아붙였다. 40조원의 재정 보강,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 세제, 케이블카 추가 설치, 한강 개발…. 이슈를 선도했다. 시작부터 공세적으로 나선 것은 가라앉은 심리 때문이었다. 새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는 ‘심리 반전’이었고 그 기준으로 보면 성공적 데뷔였다.

관가 안팎의 평가도 호의적이다. 당황했던 관료들도 적응하는 분위기다. 한 관료는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했다. 실제 지식경제부장관 때도 “왜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하냐. 공무원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을 많이 했다. “스스로 공무원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야 정책도 잘 나온다. 국민이 인정하는 공무원은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이라는 게 최 부총리의 지론이다.



국정 철학(경제부흥과 국민행복)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관료들은 ‘경제부흥을 통한 국민행복’으로 읽는다. 경제활성화 대책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다.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를 만들고…”의 식이 되풀이된다.
반면 최 부총리는 ‘국민행복=경제부흥’이다. 국민이 잘 살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경제는 실패했다는 논리다. 경상수지 흑자, 대기업의 이익 등은 국민행복과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 기업소득환류세제나 비정규직 대책 등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책 기조의 색깔이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받는다.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의 정책을 넘나든다.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왔다 갔다 한다. 정치적 수사로 경제 심리를 회복시키고 경제 정책의 물량 공세로 선거를 좌지우지 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내놓은 경제정책이 우파와 좌파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현상도, 그 자체로 즐긴다. “국민이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최 부총리)는 거다. 실용주의, 등소평의 ‘흑묘백묘’를 연상케 한다.
최 부총리도 부정하지 않는다. 케인즈학파에 가까운지, 최근 화제가 된 피케티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을 때 최 부총리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나, 잡파야”.

문제는 ‘잡파’에 내재된 위험성이다. 정치인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아직은 정치인의 단점(비합리성), 관료의 단점(경직성) 대신 관료의 장점(합리)와 정치인의 장점(유연함)이 부각된다. 하지만 제어 장치가 가동하지 않으면 지도에 없는 길에서 헤맬 수 있다.


임기가 ‘보장된’ 전무후무한 경제부총리라는 점도 강점이다. 내년말까지 18개월 동안 자신의 전략에 따른 정책 구사가 가능하다. 첫 한달의 심리 반전, 이후 2~3개월의 법안 전쟁, 새해 경제정책…. 언제 바뀔지 모르는 장관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힘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여러 정책을 하나로 관통하는 철학이 없다면 정책의 나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잡파’와 ‘잡탕’ 한 끝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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