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14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이용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이 회장은 지난해 8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나빠져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재판부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검찰의 구형량만 놓고 본다면 '선처'의 여지가 조심스럽게 열린 모습이다. 특히 이날 법정에서 이 회장은 눈도 못 뜰 정도로 힘겨워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점을 비춰보면 9월4일로 예정된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1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한 구형 이유에 대해 "회사를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해야 할 회장이 세금을 포탈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점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이 회장은 횡령 금액 대부분을 회사에 변제했고, CJ가 영화산업을 통해 한국 문화를 수출하고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경제에 기여한 바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이날 징역5년 구형에 대해 일부에서는 "법원이 선처할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강 악화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 회장이 집행유예 등 판결을 받아 몸을 추스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재판장님, 살고 싶습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살아서 CJ를 반드시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며 "이것이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고, 또 길지 않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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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변호인은 "이 회장이 이식 받은 신장의 수명은 10년 정도인데 그 사이에 거부반응이 나타나 그 수명이 더욱 단축됐을 것"이라며 "이 회장은 사실상 10년 미만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눈도 못뜨는 '중증환자'
실제 이날 결심공판에 출석한 이 회장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건강 악화가 뚜렷한 모습이었다. 이날 공판에도 신장 수술에 따른 면역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받고 법정에 섰다. 지난해 부인 김희재 씨의 신장을 이식받은 이 회장은 구치소 생활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신장이식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근육위축) 증상까지 더해져 몸무게도 평소에 비해 10kg이상 빠지고 혈압도 크게 오르는 등 건강상태가 최악이라는 평가다.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며 치료를 받던 그는 6월에는 심한 탈수 증상을 호소했다. 현재는 구속 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이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신장내과 전문의들은 신장 이식 수술 후 면역 억제 치료 과정에서 이 회장의 CMT 증상이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신장이식 수술 후에는 이식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3~4가지의 면역억제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며 "이중 스테로이드 제제가 포함되는데 스테로이드가 근육 소실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이 회장의 경우 원래 근육병이 있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근육이 더 심하게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약제가 되레 환자 증상을 더 악화시키지만 면역억제제도 끊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구속 수감 중이던 이 회장은 지난 5월 고강도의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바 있다.
◇암 등 신장이식 후유증에도 노출
신장이식 수술 후 사용하는 면역억제제는 면역기능을 떨어뜨려 당뇨와 고혈압, 암 등의 위험을 높인다. 이식 수술로 인해 위장기관에 합병증이 오기도 하며, 골다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장이식은 투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양한 합병증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김좌경 한림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신장 이식 10년 후 환자 15~20% 정도에게서 암이 생길 수 있다"며 "당뇨의 경우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면 30~40% 환자에게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식 수술 후 급격한 체중 감소도 신장질환 때문에 있었던 부종이 빠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단 부종이 없던 환자라면 그만큼 영양상태가 나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신장 이식 수술 이후 지난 4월부터 2개월 간 이어진 구치소 생활이 이 회장의 건강 상태에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양 교수는 "이식 후 초기 6개월까지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못하게 하고 집에서 격리생활을 시키는데 구치소 수감 생활은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며 "면역계가 크게 약해진 상태에서 구치소 생활은 환자 건강에 치명적인 변수를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법적인 문제는 잘 모르지만 신장 이식 후 현재 환자의 상태를 볼 때 구치소로 이송하는 것은 의학적으로는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너 부재로 그룹 경영난은 '시계제로'
CJ그룹은 이 회장 부재로 비상경영을 1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오너의 용단이 필요한 '미래 먹거리' 창출은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오너 부재로)창조적인 공격경영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수성에만 급급한 상태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영 공백은 곧바로 그룹의 투자 차질로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는 그룹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인데 오너가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CJ그룹 계열사가 올 상반기에 중단 또는 보류한 투자 규모만 4800억원에 이른다. 그룹이 당초 계획했던 올 상반기 투자액 1조3000억원의 35%에 달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