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제한폭, "주식시장에서 삭제해야 할 단어"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2014.08.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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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69>가격제한폭 제도의 폐해 4가지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림=김현정 디자이너/그림=김현정 디자이너


"가격제한폭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먼저 삭제해야할 단어이다."

머니투데이방송(MTN)의 유일한 기자는 그의 책 『누가 주식시장을 죽이는가?』에서 한국 주식시장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가격제한폭 폐지를 꼽았다.

그가 가격제한폭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가격제한폭은 새로운 정보에 대한 주가의 반응을 지연(spill-over)시킨다. 주가 변동의 폭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주가가 균형 가격을 제때 찾아가지 못해 가격 효율성이 떨어진다.

유 기자는 "가격 제한 때문에 이벤트가 발생한 당일의 거래량이 감소하고 오히려 그 다음날 거래가 증가하는 기현상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둘째, '자석효과'를 초래한다. 주가가 상(하)한가에 근접하면 매수(도)주문이 증가하면서 주가가 자석처럼 상(하)한가에 달라붙은 채 다음날로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주식이 자석도 아닌데도 말이다.

유 기자는 "개인투자자들은 주가가 12%가량 오르면 자석효과를 기대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동물적으로 따라 들어가 매수하는 관행에 젖어들고 있다"며 가격제한폭의 폐해를 개탄했다.

셋째, 가격제한폭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데 있다. 소위 '묻지마 투자'나 '폭탄 돌리기', '테마주·작전주 투기' 등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투자 행태가 만연하는 바탕에는 하루하루의 주가를 15%로 묶어두는 가격제한폭이 있다.


유 기자는 "가격제한폭이 최악의 파국을 막아주기 때문에 요행을 바라고 투자를 해도 된다는 심리가 팽배해졌다"고 지적하며 "만약 가격제한폭이 없다면 폭탄 돌리기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폭탄이 터졌을 때의 후유증이 15%가 아니라 30%, 50%라면 누가 감히 심지가 타들어가는 폭탄을 받아 안겠는가.

넷째, 우리나라 증시의 작전은 기본적으로 가격제한폭에서 싹트고 자란다. 예를 들어, 2012년 12월 적발된 대선테마주 작전 세력들은 상한가 규정을 악용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유 기자는 "가격제한폭이 개인투자자 보호, 시장 안정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말은 명백히 거짓"이라며 오히려 작전 세력들에 의해 악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격제한폭 폐지론은 유 기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재무학의 여러 시장미세분석(market microstructure) 연구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가격제한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1998년 15%로 가격제한폭을 확대하며 가졌던 공청회에서도 가격제한폭의 궁극적 폐지로 입장이 모아졌다. 2008년 한국증권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가격제한폭이 궁극적으로 폐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행동재무학은 가격제한폭은 비이성적 투자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식 투자자들은 15%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숫자(가격제한폭)에 얽매여 주식 매매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가격제한폭이 8%이거나 20%여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에선 이를 두고 마치 한번 내려진 닻(anchor)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해서 '앵커링(anchoring)'이라고 부른다. 투자자들은 처음 머릿속에 입력된 가격제한폭이 향후 판단의 기준점으로 작용해 이후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최초의 기준에서 잘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한번 입력된 가격제한폭이 투자자들의 유연한 사고를 방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호재가 나오면 주가는 무조건 15% 상한가 반대로 악재면 15% 하한가, 이런 식으로 주가가 변동하게 된다. 15%나 되는 주가 급등락을 초래할 만한 호재인지 악재인지 이성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탈에 따라 형성되지 않고 15%라는 가격제한폭에 의해 영향을 받는 꼴이다.

유 기자는 가격제한폭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후진국형 모델로 고착시키는 현행범으로 규정하고 "가격제한폭이 폐지되면 감정이나 요행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2일 정부는 현행 15%로 묶여 있는 가격제한폭을 30%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걸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유 기자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격제한폭이 폐지될 경우 주식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여러가지 장밋빛(?) 청사진을 얘기하고 있다. 비록 유 기자가 예측하는 대로 주식시장이 완벽하게 변모하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한 단계 업그레드될 것이라는 쪽에 한 표를 던진다.

/저자=유일한 머니투데이방송(MTN) 기자/저자=유일한 머니투데이방송(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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