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복지증진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을까

머니투데이 미래연구소 강상규 소장 2014.08.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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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드]<23>혁신 없는 복지(entitlement)에만 매달릴 때

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이다.

/그림=김현정 디자이너/그림=김현정 디자이너


# "단순히 임금인상이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직원 건강과 안전 그리고 복지증진 방안 등을 논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달 말 제14차 임단협 교섭이 결렬되자 현대차 윤갑현 사장은 1일 노조를 향해 협소하게 '임금인상' 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광범위한 '복지증진'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윤 사장은 "(노조가) 오로지 '돈'만이 쟁점이 되는 소모적 노사분쟁으로 '귀족노조'라는 주변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까지 언급하며 임금인상에 집착하는 노조를 압박했다. 대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지제도를 개선해 임금인상과 비슷한 효과를 얻어가면 되지 않냐는 메시지를 던졌다.

현대차의 이번 제안은 언뜻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카드처럼 보인다. 회사 입장에선 당장 통상임금 확대가 단기 성과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을 수 있고 노조는 '돈'만 밝힌다는 사회적 비난은 피하면서도 혜택은 고스란히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1980년대 들어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자 후한 복지(entitlement)로 노조 달래기에 나섰다."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에 복지 카드를 꺼낸 건 현대차만이 아니다. 1980년대 들어 더 이상 노조를 설득하는데 한계를 느낀 GM은 당장 임금을 올려주는 대신 장기근무 후 퇴직 시 매우 후한 퇴직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복지 카드를 제시했다. 또한 부득이 직원을 해고할 경우엔 급여는 물론이고 의료보험과 퇴직연금도 고스란히 제공키로 했다. 심지어 급여가 인상되면 이것도 반영키로 했다.

이런 복지 제도는 미래의 의무로 당시 회계처리기준에 따르면 장부상 부채로 계상하지 않아도 됐기에 회사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하나도 나쁠 게 없었다. 노조도 새로운 보상체계가 안정적인 근무를 보장할 뿐더러 성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들어 크게 환영했다.


그렇다면 GM의 복지 카드는 성공을 거뒀을까? 노사 모두를 만족시킨 복지 제도는 GM을 세계 최고의 혁신 자동차 기업으로 변모시켰을까? 노조는 고용 안정을 얻는 대가로 회사의 장기 이익을 위해 신바람나게 일했을까?

# "2009년 GM이 파산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노사 모두 혁신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특권적 복지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GM의 복지 제도의 결과는 끔직했다. 한 예로 2000년에 정리 해고된 한 GM의 노동자는 이후 6년간 복직되지 못했지만 급여와 의료보험, 퇴직연금 및 급여 인상분 혜택을 그대로 누렸고 2006년 한해에만 그에게 소요된 비용이 10만불(한화 1.1억원)이 넘었다.

GM의 영업이 갈수록 악화되자 수천 명의 직원들이 정리 해고되었고 회사의 퇴직 급여 의무는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급기야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렸지만 이 복지제도는 절대로 축소되지 않았다. 결국 GM은 2009년 파산하고 만다.

당시 CEO였던 릭 왜고너(Rick Wagoner)는 2008년 12월 미 국회를 방문, 구제금융을 구걸하며 1980년대 도입한 복지 제도의 잘못을 인정했다. USC대학 마케팅 교수인 제라드 텔리스(Gerard Tellis) 교수는 그의 저서 『중단없는 혁신(Unrelenting Innovation)』에서 GM의 복지 제도는 노사 모두 단기 성과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탄생한 소산이라며 혁신을 장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비판했다.

# “세계 최대 테크놀러지 기업 IBM이 1990년대 중반 몰락 위기에 몰린 원인으로 조직 전체에 깊숙이 뿌리내린 특권적 복지 문화(a culture of entitlement)를 빼놓을 수 없다.”

특권적 복지 문화에 빠져 혁신을 잃고 주요 시장에서 경쟁에 밀린 또 다른 사례는 IBM이다. 1960~70년대 전세계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며 매년 수천 개에 달하는 특허를 등록했던 IBM은 1990년대 중반 죽어가고 있었다. IBM의 보상 체계에는 혁신을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빠져 있었고 혁신이나 성과달성에 상관없이 보상이 주어졌다. 직원들은 단지 IBM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고용 보장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후한 복지 혜택을 누렸다.

이때 새로 CEO로 영입된 루 거스너(Lou Gerstner) 전 IBM 회장은 IBM의 문제점으로 조직 전체에 깊숙이 뿌리내린 특권적 복지 문화(a culture of entitlement)를 꼬집었다. 그는 은퇴 후 작성한 회고록(꼬끼리를 춤추게하라: Who Says Elephants Can’t Dance?)을 통해 특권적 복지 문화에 빠져있던 IBM을 개혁하는데 너무나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거스너 전 회장은 IBM 조직내에 뿌리박힌 특권전 복지 문화를 뜯어 고치고 혁신을 장려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과감히 도입하며 IBM을 다시 혁신기업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CEO의 명령만으로 수십만명의 조직원들의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킬 순 없다. 조직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건 효과적인 인센티브다"고 말했다.

# 1980년대 GM은 더 이상 혁신과 장기 성장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로 노조를 격려(inspire)하지 못했다. 노조도 더 이상 자신들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일치한다고 보지 않았다. 노사 모두 단기 이익만을 좇았다. 결과적으로 탄생한게 회사의 장기 이익을 해친 복지 제도였다. GM은 노조와의 단기 평화를 얻을 목적으로 혁신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특권적 복지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현재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하는 노조를 달래기 위해 복지증진 방안 카드를 제시한 현대차의 모습은 30여년 전 GM의 대응과 너무나 비슷하게 보인다. 노동자도 단지 현대차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해마다 최대성과 요구를 무한반복"하며 '그들만의 리그'속에 살고 있다. 30여년 전 GM 노동자나 20여년 전 IBM 직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회사가 혁신을 보상하지 않고 장기 이익을 저해하는 복지에 의존할 때 나오는 결과까지는 현대차가 GM이나 IBM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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