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좌우가 없고 앵글이 있을 뿐

머니투데이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2014.08.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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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최후의 언어'

카메라는 좌우가 없고 앵글이 있을 뿐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와 디지털 카메라 시대의 특징을 '아날로그는 생각 한 후 찍고, 디지털은 찍고 나서 생각한다'고 정리한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모두가 디지털로 달려가는 세상에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두 권의 소리 없는 외침이 눈에 띄었다.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작가 이상엽 씨의 글·사진집 '최후의 언어'와 이란의 시사만평가 마나 네예스타니의 삽화집 '괜찮아, 잘될거야'(돋을새김 펴냄) 이다.



'철학자와 하녀'(메디치 미디어 펴냄)의 철학자 고병권이 "교육이란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각성시키는 것이다.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듯한 생각의 일깨움"이라 말한 것처럼 한 컷의 삽화가 던지는 깨우침을 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중동의 현장을 통해 보편적 인권의 현실을 고발하는 네예스타니의 삽화집은 한 컷 한 컷 보면서 스스로 각성할 일이다.



'최후의 언어'를 펴낸 이 작가는 진보진영에 서있는 활동가이다. 그는 평소 무신론자이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범신론자가 된다. '인간의 정신만으로 세상과 대항할 수 없는 무수한 인류를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 무수한 인류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은 수집가에 버금갈 다양한 아날로그 카메라를 메고 자신이 살고 있는 광교산 자락 고기리 계곡의 사계와 단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인간과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예술적 카메라'와 '펜'은 해인사 다비식, 변경의 역사 고구려, 철탑 위의 노동자, 제주 구럼비 바위를 종횡으로 누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실크로드, 바이칼, 말라카를 거쳐 다시 내성천, 새만금, 팽목항을 거쳐 희망을 잃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멈춘다. 끝내 그가 최후까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사람과 희망'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연초에 '노동의 새벽' 박노해 시인이 티베트부터 인디아까지 유랑하며 기록한 시화집 '다른 길'(느린걸음 펴냄)을 들고 우리 곁에 나타났었다.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는 이 작가가 충무로에서 구매를 도와준 라이카 M6 아날로그 흑백 카메라였다. '흔해서 값 싸고, 평생 험하게 써도 부서질 일 없는 튼튼한 카메라'다. 니콘 F4s 역시 기자들끼리 몸싸움 때 상대방 카메라를 치거나 경찰들의 철모에 부딪쳐도 끄떡없어 포토저널리스트 카메라로 불린다.


아날로그 사진기의 싼 가격과 품질을 강조하는 저자, 얼마 남지 않은 필름을 아껴 쓰고 있는 저자로부터 카메라에 제대로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총체적인 내공을 넘겨받을 좋은 기회다. 카메라와 사진의 작은 역사까지 부록으로 붙었다.

◇최후의 언어=이상엽 지음. 북멘토 펴냄. 282쪽. 1만 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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