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사건으로 드러난 '뇌물 관행', 기막힌 실태 봤더니…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14.07.16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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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해' 피해자 장부내용, 건축물 검사에 악습 여전

'제력가 청부살해사건' 피해자 숨진 송모씨(67)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5억2000만원짜리 차용증 등 압수품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공개됐다. /사진=뉴스1'제력가 청부살해사건' 피해자 숨진 송모씨(67)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5억2000만원짜리 차용증 등 압수품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공개됐다. /사진=뉴스1


"당연하지 이 사람아. 돈을 안 받아 간 적이 한 번도 없어."

수도권 지역에서 건축 시공업을 하는 A씨. 자신이 지은 건물의 특검(특별검사)를 받는 날 특검을 맡은 건축사에게 "차를 빼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건물 허가의 열쇠를 쥔 건축사가 "운전에 자신이 없으니 주차된 차를 빼달라"고 한 것.

A씨가 주저하자 직장 동료가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차를 빼는 척 하면서 차 안에 봉투를 두고 가라는 뜻이야." A씨는 "사전 특검까지 합쳐 총 7번의 특검을 받는 동안 한번도 돈을 안 받아 간 적이 없다"며 "봉투를 건네지 않으면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천억대 재력가 청부살해사건'의 피해자 송모씨(67)의 금전출납장부(매일 기록부)에 현직 검사와 시의원, 구청·세무·소방 공무원 등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피해자 송씨의 건축 일을 맡은 건축사 한모씨가 건물의 용도 변경과 관련해 김형식 의원의 소개로 담당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는 진술이 경찰을 통해 전해지며 건물 허가 과정에서 금품이 오가는 뿌리 깊은 관행이 또 다시 부각되고 있다.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늘리려면 건축사한테서 특검을 받고 소방과 하수도, 가스, 정화조 등 해당 공무원에게서 '필증'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 때 공무원이 건물 주인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미루는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시공업계 관계자 B씨는 "해당 공무원이 뚜렷한 이유 없이 건축물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전화로 통보하는 일이 파다하다"며 "건물을 다 짓고 세월만 보내다가 봉투가 오가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때 공무원에 돈을 전달하는 역할은 주로 건축사가 맡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검 건축사가 한 번에 수십, 수백만원에 달하는 돈을 받으면 자신의 몫을 떼고 나머지를 해당 공무원에게 전한다는 것.


건축설계사무소 관계자 C씨는 "건축사들은 수급책 역할을 하는 7, 9급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네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간다"며 "건축주와 계약할 때 '허가를 따는 돈'을 따로 책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부적절한 관행은 서울을 벗어난 지방 기초자치단체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는 전한다. 건축법에 따르면 연면적 5000㎡ 이상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개축하려면 여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 건축심의위원회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 규모가 작은 건축물은 지자체 건축 공무원의 인허가만 얻으면 된다. 주로 규모가 작은 건축물이 지어지는 지방에선 건축물 허가가 사실상 건축직 공무원의 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은 서울보다 업체와 공무원 간 관계가 끈끈해서 다른 지역에서 건축업자가 들어오면 '요구하는 서류가 많아 더러워서 못하겠다'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파다하다"며 "이런 관행 탓에 맘에 안 들어도 그 지역 공무원들을 꿰뚫고 있는 건축사와 협업해 설계와 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건축물 허가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는 이유는 허가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담당 공무원들에 의해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건축물 허가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섭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 전화로 건축주에게 '된다, 안된다' 할 것이 아니라 허가가 안되면 왜 안되는지 그 사유를 누구든지 볼 수 있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건물 허가 불허 통보를 공문서를 통해 하거나 허가 과정을 인터넷에 올려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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