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껴안는 여자, 나무에 계를 주는 남자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14.07.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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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 생태 감수성을 위한 글 -1

천리포 수목원의 동백과 베롱 /사진제공=작은경제연구소천리포 수목원의 동백과 베롱 /사진제공=작은경제연구소


'tree hugger'

나무를 껴안는 사람이다. 나무와 가슴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이다. 나무를 느끼고 아끼고 보듬는 사람이다. 나는 나무를 껴안아 보았나? 아니, 흉내만 냈다. 시늉만 했다.

식물학자 조안 말루프. 그녀의 별명이 'tree hugger'다. 그녀는 진짜 나무를 껴안는다. 나무와 가슴과 체온을 나눈다. 나무를 느끼고 아끼고 보듬는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생태학을 가르치는 그녀의 연구실은 숲이다.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녀의 연구 대상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나무와 어떤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녀의 결론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식물학자로서 그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한 그루를 벨 예정이라면 어쩌면 그 나무 위에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될 아이 하나와 최소한 다섯 종류의 곤충들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소나무를 더 많이 심는다면 아마 호랑가시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희생될 것이다. 그리고 호랑가시나무가 줄어들면, 호랑가시나무 열매도, 깔따구도, 신비스러운 진균류도, 굴나방도, 오피어스도, 새들도, 멋진 크리스마스 장식도 줄어들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tree hugger'에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급진적'이라는 딱지는 적절치 않다. 그것은 편을 가르는 사람들의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그는 평화적이다. 영적이다. 겸허하다. 그런 자세로 그녀는 말한다.

"나는 생태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을 탐색하고 있다. 탐색하는 내 손엔 정교하게 그려진 지도가 들려 있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미로에 빠져 가장자리만 맴돌고 있음을 맨 나중에야 알게 된다. 난 결국 중심으로는 단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다. 숲은 우리가 결코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다.“

◇ 자연과 생명에 눈먼 생태맹

그런 숲이 마구잡이로 잘려나가고 있다. 사적 이윤과 개발 논리에 밀려 대책 없이 망가지고 뭉개지고 있다. 그녀가 사는 동네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국 메릴랜드의 작은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숲을 정부가 사들여 공원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원시림을 이룬 숲의 나무를 베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 그녀에게 공원은 숲이 아니다. 숲은 단지 나무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원에 반대한다. 그러나 피켓을 들진 않았다. 대신 사람들을 모아 숲 속 나무 하나 하나에 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표를 걸었다. 시 당국은 '9·11 추모의 숲'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들을 벨 수 없었다.

태국의 피탁 스님도 비슷한 방법으로 숲과 나무를 지킨다. 태국의 숲 파괴는 심각하다. 무분별한 개발로 나라 전역에서 대규모 삼림 훼손과 벌채가 가속화되고 있다. 스님은 이 숲을 지키기 위해 나무에게 수계 의식을 진행한다. 신도들에게 계를 주듯 나무에게도 계를 주고 주홍색 샤프란 승복을 둘레에 감아준다.

스님은 "자본주의 경제 개발과 소비주의의 결과로 태국 전역이 개발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고통의 뿌리인 무지와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무감각과 무지를 흔히 '생태맹'(ecological illiteracy)이라고 한다. 문맹, 컴맹만 문제가 아니다. 생태맹은 더 문제다. 도시에 탐욕에 홀리고 문명의 편리에 물들어 자연에 눈 먼 사람은 건강할 수 없다. 행복할 수 없다. 나무를 껴안고 숲을 지키는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생태맹이 아닌가?
뭇 생명에 눈멀지 않았나?
살아 있는 것들의 영혼에 무지하지 않은가?

담양 죽록원 /사진제공=작은경제연구소담양 죽록원 /사진제공=작은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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