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잠금해제]팬택사태, 채권단 역할을 다시 묻는다

머니투데이 신혜선 부장 2014.07.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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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의 잠금해제]팬택사태, 채권단 역할을 다시 묻는다


"이동통신 3사가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끝까지 출자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기업가치를 따진 뒤 청산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팬택 이준우 대표가 차마 울 수조차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호소문을 발표하던 7월 10일. 기자회견 후 산업은행측이 밝힌 입장이다. 물론, "다만 채권단은 이동통신 3사의 협조를 계속 기다리며 팬택이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통신사를 압박했다.



채권단의 팬택 경영정상화 방안이 발표될 당시. 업계에서는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통신사가 불법보조금 영업을 하다 정부로부터 영업정지 제재를 받았고, 결국 그 때문에 단말기를 공급하지 못한 팬택이 위기에 처했다는 논리 속에 찾은 '묘수'라는 의미다.

단말기를 구매하는 위치에 놓인 통신사들이 난데없이 팬택을 죽이고 살리는 칼자루를 쥔 위치에 서게 됐다.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간 3월 4일부터 지금까지 채권단이나 통신사들은 팬택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우선 통신사는 영업정지가 들어간 3월 이후부터 대략 35만여대의 단말기를 구매했다. 당장 팔지 않으면 안 되는 팬택의 처지를 감안해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단말기를 구매했다. 팬택은 이 자금으로 3~5월을 연명했다. 물론 통신사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같은 기간 채권단이 한 일은 경영합리화방안을 만든 것이다. 그 방안에는 채권단의 3000억원의 출자 의사가 포함돼있다. 더불어 채권단에 참여하지도 않고 있는 통신3사에 1800억원의 출자전환을 '주문'했다. 채권단이 팬택을 살려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을 뒷받침할 적극적 행동이 따라야하는데 채권단은 오히려 통신사에게 공을 넘겼다.

통신 3사가 팬택으로부터 받아야할 1800억원의 채권을 출자해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렵지 않다. 손해가 나지만 워크아웃된 기업의 부채를 처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이후 상황'이다. 출자 전환을 할 경우 주식은 감자조치 될 예정이다. 이 조치 후 사실상 2대 주주(대략 30~35%)가 될 통신사들은 계속적인 지원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엔 아예 주주로서 책임이 추가될 게 자명하다.

통신사들이 "최소한 경영에 참여를 할 기회를 주던지, 채권단이 추가 신규자금 출자를 하면서 통신사를 끌어들이든지, 이후 추가 지원이나 단말기 의무 구매 압박을 하지 않는다든지, 뭔가 통신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다.

이미 채권단은 경영합리화방안을 발표하면서 팬택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기업가치보다 높다고 밝혔다. "살려야하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해놓고 "통신사가 출자하지 않으면 다시 따져보겠다"는 추가 발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도의적 책임'에 대한 접근법도 마찬가지다. 통신사들은 필요없는 단말기를 구매했듯이 이미 도의적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접근법은 '어느 정도로 추가할 것인가, 어디까지 가능한가, 방법은 무엇인가'여야 한다. '이미 마련한 안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식의 태도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통신사에게만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불법보조금의 또 다른 주체인 제조사, 끝도 없는 되돌이표 식으로 보조금 규제를 하는 정책 당국도 이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심각하다. 팬택은 10일 220억원 가량의 협력사 결제금액을 막지 못했다. 팬택이 발행한 전자채권으로 은행에서 할인을 받아 자금으로 썼던 350여개 중소 협력업체들 중 스스로 그 금액을 막지 못했다면 은행 거래가 중단됐을 거다. 이들은 이미 1차 부도상황에 처했다. 팬택의 상황이 국내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이미 현실화됐다.

팬택과 그 협력사 전부를 죽일 것인가. 지난 2011년 팬택은 1차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당시, 팬택은 채권단에 2200억원, 개인 등 비협약채권에 별도 2300억원, 총 4500억원을 갚았다. 민간기업의 '도의적 책임'을 끌어내기 위한 채권단의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진정한 신의 한 수'로 나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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