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고영훈 작가 /사진=이언주 기자
사진인지 그림인지, 20대로 보이는 잘 생긴 청년의 얼굴에 눈이 간다. 감탄을 자아내는 또렷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막상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림이다. 나란히 걸린 또 다른 캔버스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의 남자가 보인다. 두 작품 사이에는 흐릿한 얼굴이 있는데, 누군지 알 수 없어 환영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을 적당히 닮은 또 다른 누군가 같기도 하다.
이 초상화 연작은 40여 년간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대표작가인 고영훈 작가의 '세대'(Generation)라는 작품이다. 청년은 작가의 둘 째 아들이고, 나이든 남자는 작가 자신이다. 지금껏 사물을 주로 그렸던 그는 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세월과 함께 조금 달라진 그의 작업을 볼 수 있는 8년만의 개인전이 한창이다. '있음에의 경의'라는 제목으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도자기 시리즈와 책과 꽃 시리즈 등 신작 40여 점을 소개한다.
고 작가는 "지금까지는 실재하는 걸 친절하게 보여주는 데 매달렸지만, 이제는 환영도 그 자체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며 "예전엔 실물을 똑같이 그리는 데 집착했지만 이제는 닮게 그리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도자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실물보다 더 사실적인 백자가 있는가 하면, 형상이 뿌옇게 흐려져 마치 진공상태에 떠있는 것 같은 그림도 있다. 혹시 세월 탓에 시력이 나빠져서 그런 걸까. "실제로 눈이 나빠졌어요. 어느 날 작업하다가 안경을 벗으니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에요. 작업할 때 여러 개의 안경을 돌려써가며 그리고 있지만, 걱정은 안 합니다. 흐리게 그리면 되니까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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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중인 고영훈 작가의 작품 '세대'(Generation) 1-The Father, 2-Ko, 3-The Son /사진=이언주 기자
고영훈 '세상천지 1, 2, 3'가 걸려있는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사진=이언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