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은 정부가, 수습은 희생자·실종자 가족이 했다

머니투데이 목포(전남)=김훈남 기자 2014.05.1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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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한달]세월호 출항부터 안전 도외시, 선원은 승객 버리고, 공무원은 책임피해 우왕좌왕

세월호 침몰사고는 배의 출항과 사고발생, 수습 등 여러 국면에서 '직업윤리의 부재'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줬다.

선사와 선원들이 눈앞에 이익만 쫓고 제 몸의 안전만 생각한 탓에 수백에 이르는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고 긴급 상황을 수습해야하는 관계자들은 우왕좌왕하기 일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의 분노는 필연적이었다.

우선 세월호는 지난달 15일 적정적재량 1077톤의 2배에 달하는 화물 2142톤을 싣고 인천을 떠났다. 고박(화물고정)은 규정에 어긋난 지 오래. 적자에 시달리던 선사 청해진해운의 상습 과적운항이 그날도 자행됐다.



안전점검보고서는 입사한 지 반년이 채 안된 3등 항해사 박모씨가 전임자에게 배운 대로 선장대신 작성했다. '탑승객 474명, 화물 657톤, 컨테이너 0개, 차량 150대', '선적상태 양호' 배의 상태와 전혀 일치하지 않은, 있으나마나한 보고서였다.

사고순간 선장 이준석씨는 맹골수도가 처음인 박씨에게 조타실을 맡기고 자리를 비웠다. 2012년 일본에서 배를 사올 때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선장으로 일했음에도 위험 수역을 초보에게 맡겨둔 것. 배의 키를 잡은 조타수 조모씨 역시 초보이긴 마찬가지. 사고해역에서 균형을 잃은 배는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급격히 기울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배가 침몰할 때까지 선박직 선원들이 한 일은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과 구조요청 뿐. 승객을 우선 구조해야한다는 '선원의 의무'는 저버린 지 오래였다.

그동안 일부는 선원임을 알아볼 수 있는 옷을 갈아입었고, 탈출 지시 여부를 묻는 승무직 선원의 무전에 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통로에 부상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마저 버리고 탈출한 '비정함' 덕에 선박직 선원은 전원이 생존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에서 현장의 신속한 판단과 대응은 구조자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상급자 혹은 중앙 컨트롤타워의 명령만 기다리는 폐쇄적인 문화와 재난 전문가의 부재는 이번 참사의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승객들이 들리는지 확인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 "퇴선하라"는 방송만 했을 뿐, 선실진입 없이 제 살길 찾아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만 구조했다. 결국 승객 476명 중 구조자는 172명, 이 가운데 단원고 학생은 겨우 75명뿐이었다.

사고현장 수습을 맡은 당국자들의 한박자 느린 움직임과 책임회피 행태는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한 번 더 상처를 줬다.



대표적인 예가 인원집계 혼선이다. 사고 초기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발표로 헛발질을 한 정부는 20여일이 지나도록 실종자, 구조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실종자 집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2주 넘게 숨기기에 급급했다.

수색작업에 집어등을 설치한 오징어잡이 어선을 활용한 것도, 바지선을 설치한 것도 유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 보다 효율적인 사고 수습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 현장 책임자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되레 사고 초기 선사에 비용문제를 거론해, '사람보다 돈이 먼저냐'라는 공분을 샀다.

사고 수습을 이끌어야 할 정부는 해명과 변명에 급급했다. 지난 한달동안 해경과 해수부,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등이 언론에 보내온 해명자료는 79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2~3건의 언론 보도에 해명자료를 냈다.



이장희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재난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가 안 돼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배에서는 선장이 사실상 CEO임에도 승객 구조를 외면하는 등 직업의식과 책임의식 자체를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경의 경우 초동단계 지시에 따른 사후책임을 피하기 위해 선장 이씨에게 판단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착수 과정에서도 비용문제를 먼저 거론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 때문에 구조가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고질적인 '관피아'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도 특징이다. 해양운항의 안전관리를 위임받은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은 해수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익단체에 정부의 기능을 맡긴 결과는 '부실검사'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출구전략'에 눈이 멀어 본연의 업무를 소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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