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그날 이후 우리 삶은 달라졌다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 기자, 김민우 기자 2014.05.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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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한달]슬픔 빠진 전국민…"'공감' 에너지로 극복해야"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30일째인 15일 서울광장 희생자 분향소 옆으로 추모의 글귀가 담긴 종이배가 놓여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30일째인 15일 서울광장 희생자 분향소 옆으로 추모의 글귀가 담긴 종이배가 놓여 있다. /사진=뉴스1


#1 안산에서 26년을 거주한 시청 공무원 A씨(45)는 세월호 침몰사고 첫날부터 30일째 팽목항 상황실을 지키며 봉사하고 있다. A씨의 딸은 고등학교 2학년생. 이번에 딸의 친구 가운데 5명이 사고를 당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교대도 고사하고 일하던 그는 어깨통증이 심해져 결국 연휴 때 이틀 동안 집을 다녀왔다. 그는 "치료받으러 잠깐 안산으로 올라갔을 때 딸 손을 잡고 외식을 가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지금 이러는 게 사치인 것 같고…"라며 한숨지었다.



#2 승무원 B씨(31·여)는 사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울하고 관련 뉴스를 보면 눈물이 난다. 뉴스를 안 보려고도 해봤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켠에 미안함이 커졌다. B씨는 "실종자 가족들은 더 힘들고 외로울 텐데 나는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외면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 삶은 달라졌다. 세월호에 승선한 476명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5000만 국민이 큰 상처를 입고 슬퍼하고 있다. 단지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 수백 명이 희생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고의 발생부터 구조, 수사과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부패와 비리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우리 모두가 책임을 통감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적인 '공감'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공식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달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공식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
◇거센 애도물결…국민적 '죄책감'으로

이번 사고는 한 달에 걸쳐 어느 때보다도 거센 국민적 추모 열기를 일으켰다. 사고 30일째인 15일 오전까지 경기도 안산 임시분향소와 정부 합동분향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50만명이 넘는다. 전국 각지에 차려진 126개 분향소 추모객을 합치면 180여만명에 이른다. 추모 문자메시지는 10만8000여건이 수신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면식도 없는 희생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고자 자청했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조문을 온 김모씨(50·여)는 "밥이 맛있는 것조차 미안하다. 눈을 뜨면 눈물이 계속 난다. 병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정씨(58·여)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했다. 분향소뿐 아니라 온·오프라인에 '미안하다'는 사죄와 애도의 마음이 퍼져나갔다.


추모물결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15일까지 진도 사고현장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2만6000여명. 이들은 희생자 가족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하며 아픔을 공감해, 봉사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팽목항에서 30일째 자원봉사 중인 정모씨(21·여)는 "한 번쯤 집에 올라가야 하는데 이 분들을 떠올리면 갈 수가 없다"며 "한 분이라도 가족을 영영 못 찾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족들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도 죄책감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취업준비생 김종후씨(29)는 "너무 슬프고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미안하고 마음에 걸릴 정도"라며 "술을 마시는 게 미안해서 자리를 안 만들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째인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잊지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째인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잊지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사진=뉴스1
◇'공감' 에너지 모아 슬픔 극복해야

감정은 전염된다. 전문가들은 전무후무한 이번 참사에 대해 애도물결과 슬픔이 오래 지속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슬픔에만 빠져있기보다는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과 죄책감은 서서히 자성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황금만능주의' '안전 불감증'이 세월호 사고의 근본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나부터 바뀌어야 사회가 변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줬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조용하고도 열렬히 퍼지고 있다.

두 아들을 둔 직장인 한모(46)씨는 "업자든, 공무원이든 돈 돈 하다가 세월호 같은 배가 만들어졌고, 다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이번 참사를 만든 것 아니냐"며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는지 우리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6)는 "세월호 참사 한 달 동안 슬픔과 분노 속에서 국가와 사회적 문제가 '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봉사나 기부, 적극적인 투표 등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권해수 조선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상실이나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며 "각자의 삶 속에서 이 참사를 잊지 않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상처 극복과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애도하고 슬퍼하는 '공감'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문제해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의 리더들이 믿고 따를 만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절실하다"며 "국민들이 이 문제가 정말로 해결됐다고 느낄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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