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공무원, 그리고 언론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2014.05.04 14:58
글자크기

[박재범의 브리핑룸]

사실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적은 없다. 동사무소에 대한 기억부터 그렇다.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건물을 새로 꾸몄어도 그 곳의 주인은 주민이 아닌 공무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들의 권태가 밀려왔다. ‘마치 왜 와서 내 평화를 깨는거야?’라고 따지 듯 쳐다보는 눈길에 내가 잘못 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민원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 그 너머로 여유있게 신문을 보던 한 계장의 모습, 동사무소의 전형적 그림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겐 감히 넘볼 수 없는, 이른바 ‘넘사벽’이 공무원이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야 도장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옛날 얘기가 아니다. 담당 공무원이 삐치면 식당 개업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일반 국민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도 비슷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식은 확신이 됐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다. 공무원에 대한 믿음은 아예 사라졌다. 이번엔 말단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신뢰를 기대했던 중앙부처 공무원조차 믿음을 져버렸다. 엘리트 공무원으로 불렸던 그들도 무능의 꼬리표를 달았다.



‘철밥통’과 ‘보신’이라는 공무원의 이미지에 이젠 무능이 더해졌다. 중앙정부의 리스크 관리나 결단은 없었다. 우왕좌왕 뿐이었다. 능력이 없을수록 설치기 마련. 장관은 라면 먹고, 국장은 사진 찍고, 실무자는 구급차 타느라 분주했다.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여기가 함정이다. 공무원, 관료는 사명감, 소명감으로 살아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관행에 기대기 시작했다. 국민 대신 대통령과 장관을 잘 모시면 되는 조직 생활자가 되면서다. 스스로 여러 직장인 중 하나로 위치시켰다.

과거 관료의 생명은 명예였다. 나랏일을 한다는 것부터 의미가 달랐다. 박봉이어도 사명감과 보람으로 견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무원은 언제부터인가 ‘권한+정년+연금’의 3박자를 갖춘 최고의 직업이 됐다. 더 이상 박봉을 감내하고 사명감으로 버티는 직업이 아니다. 자부심과 보람 대신 물질적 성과 체계를 갖췄다. 위험한 일에 손을 대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게 연 1000만원 이상을 좌우한다. 어느 샐러리맨처럼 승진과 보너스가 관심이다.


사명감을 품은 공무원과 월급쟁이 직장인은 마음자세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스스로는 부인한다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이 한명의 월급쟁이가 돼 버린 게 슬픈 현실이다. 사명감 대신 회장(대통령)과 사장(장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자기의 역할인 줄 아는 이들이 점차 많아진다. 관료사회나 공직사회보다 관피아가 더 익숙해 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누구 탓 할 일도 아니다. 소신껏 나랏일 하는 이들을 격려해주기는커녕 세상 물정 모르는 벽창호라며 몰아붙인 게 우리다. 모나면 정 맞는다고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관행으로 눈감아 준 것 역시 우리다. 적폐라기보다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란 얘기다.

이참에 스스로도 돌아본다. 공무원의 무능 덕에 가려졌지만 언론도 공무원 못지않은 문제 집단으로 지목됐다. 왜곡, 과잉, 축소 등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 측면이 있다. 현장의 목소리보다 머리로 만든 기사가 더 많기도 했다. 신뢰를 잃기는 공무원이나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사명감을 마음에 품은 기자라기보다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월급쟁이로 스스로를 전락시킨 것은 아닐지 돌아본다. 사명감을 잃은 공무원과 기자는 양아치에 불과한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