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패션경제학과 사회 분위기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4.04.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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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55>

[박정태 칼럼]패션경제학과 사회 분위기


 여성들의 치마 길이와 주가는 오래 전부터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주가가 오르고 맥시스커트가 유행하면 주가가 내린다는 속설은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스쿨의 폴 니스트롬 교수는 '패션경제학'(The Economics of Fashion)이라는 책에서 이를 '치마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으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1920년대와 60년대에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미니스커트 수준으로 짧아졌는데 두 번 모두 주가가 치솟은 시기와 일치한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맥시스커트는 1930년대와 70년대에 유행했는데 그때 주식시장은 침체기였다.



 기자 출신 문화사학자 프레데릭 루이스알렌은 1920년대의 화려했던 10년을 그려낸 '바로 어제'(Only Yesterday)라는 책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여성들의 짧은 치마 패션은 1929년 후반까지 유행을 탔으나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대공황이 본격화된 1930년대로 들어서자 치마 길이가 거의 바닥을 쓸다시피하는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썼다.

 치마 길이가 짧아질수록 주가가 올라가는 현상은 사람들의 활기차고 대담한 분위기를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치마 길이가 길어지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패션과 주식시장의 상관관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관찰됐는데, 17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리처드 스틸 경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더 시이터'(The Theatre)에 "여성들의 머리장식 높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고 썼다.

 대담하고 과시적인 유행은 아마도 주식투자로 얻은 수익을 사치스러운 소비를 위해 쓴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주식시장의 상승세 덕분에 큰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들이 과시적 소비에 열을 올리는 것은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투기가 판을 치는 시대일수록 사치와 방탕,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속설, 그러니까 불황기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되도록이면 짧고 도발적인 옷차림을 선호하고, 옷에 투자할 여유가 없을수록 오히려 더 튀는 옷가지를 구입하려는 심리가 작용해 불황기에 미니스커트를 더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치마-주가 이론이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다른 분야의 유행이나 패션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가령 남성들의 옷차림이나 넥타이, 구두가 화려해질수록 주식시장이 더 활기를 띤다는 것이다. 또 유행하는 색상이 밝은 원색 계열일수록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무채색 계열의 어두운 색조가 유행하면 주가는 약세를 보인다는 속설도 있다.

 이 밖에 코미디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하면 주식시장이 붐을 타고 공포영화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면 시장이 가라앉는다고도 한다. 유행하는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데 빠른 템포의 춤곡이나 흥겨운 로큰롤이 인기 차트 상위를 차지하면 강세장이고, 감상적인 발라드곡이나 컨트리음악이 인기를 끌면 약세장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패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주가와 유행의 상관관계는 모두 후행적이라는 점이다.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져서 주가가 오른 게 아니라 주식시장이 흥청거리면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거리로 나가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재볼 필요는 없다. 그건 주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 중요한 것은 치마 길이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고 체감경기다.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디자이너의 성패가 대중의 기호를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듯 주식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는 일반 투자 대중의 심리를 얼마나 냉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패션경제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여성들의 치마 길이에 따라 주가가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의 흐름 역시 한 순간의 유행처럼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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