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국민안전' 약속 못지키는 정부

머니투데이 세종=정혁수 부장 2014.04.2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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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국민안전' 약속 못지키는 정부


'국민이 안전한 나라'

1년여전, 박근혜 당선자는 대통령직 취임에 앞서 정부조직개편을 발표했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조직의 진용을 짠 것인데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눈에 띄는 '간판'들이 많았다. 이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안전행정부' 였다.

기존 명칭인 '행정안전부'에서 '안전'과 '행정'의 순서를 바꾼 안전행정부의 경우, 얼핏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말은 달랐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순위를 조정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을 보면서 국민들은 '첫 여성 대통령은 역시 다른 게 있어' '이젠 정말 편안한 나라에 살게 됐구나'라는 바람을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안전만큼은 확실히 하겠다'는게 박 대통령의 자신감이었는지, 표심(票心)을 헤아리는 오랜 정치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차치하고,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을 국정의 키워드로 삼았다는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부녀자 성폭행, 아동 납치 등 잇따른 강력 범죄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안전을 어떻게 답보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위기대응 시스템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각종 사건·사고 발생시 지휘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 기존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 재정비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준비가 뒤따라야 했지만 '안전'은 구호 속에서만 떠다녔다.

안전행정부가 제일 먼저 한 일도 '신장개업'을 알리는 일 이었고, 전국 자치단체별로도 관련 부서 이름에 '안전'이라는 두 단어를 보태고 그 밑으로 안전총괄과를 신설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다.

기능이 뒤따르지 못한 채 명찰만 바꿔달았던 박근혜 정부의 '안전'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세월호와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 사이에 이루어진 12분간의 교신내용을 보자. 세월호가 처음 사고 신고를 한 곳은 눈앞의 진도VTS 아닌 제주였다.
(제주VTS) "아, 세월호. 항무제주"
(세월호) "아 저기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긴급상황을 접한 제주VTS는 잠시 뒤 제주해경에 상황을 전파한 뒤 오전 9시2분 해수부 상황실에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정작 사고해역과 제일 가까운 진도VTS에는 9시6분이 돼야 연락이 취해졌다. 그 사이 황금같은 10여분이 흘렀고 다시 교신이 이루어졌을 때는 잠시 대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제주VTS) "네, 지금 해경한테 통보했구요. 저희가 진도VTS랑 완도VTS에 통화중에 있으니깐요. 잠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생사를 다투는 승객들의 긴급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고 해역을 담당하는 진도VTS가 제일 마지막에 연락이 닿은 건 이원화돼 있는 관리체계 때문이었다. 전국 17개 VTS 가운데 대부분은 해양수산부가 관할하지만, 진도와 여수 2곳은 해양경찰청이 관할하고 있다.

이렇듯 지휘체계가 다르다 보니 생과 사를 가르는 긴박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양 기관 사이에 유기적인 협조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엄청난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상시의 '연습'은 실전에서 '실력'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구조를 요청하는 세월호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정부에게 국민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

"새 정부가 안전을 강조하니 고생하셔도 보람은 크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달라진 게 뭐가 있나요. 안전 관련 부서를 만든다고 해놓고 행정직들의 인사잔치만 요란했죠"
지난해 현장에서 들었던 한 일선 소방공무원의 말은 구호 속의 '안전'과 현장의 '안전'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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