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사냥꾼' 금지법 나온다.."로펌 악용 방지"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14.04.1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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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친고죄 조항 악용.. 여야, 친고죄 강화 공감대

지난해 글꼴(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법무법인의 편지를 받은 경남의 한 농장 간판. 농장은 합의금을 물지는 않았지만 이후 다른 글씨로 간판을 바꿨다./법률소비자연맹 제공지난해 글꼴(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법무법인의 편지를 받은 경남의 한 농장 간판. 농장은 합의금을 물지는 않았지만 이후 다른 글씨로 간판을 바꿨다./법률소비자연맹 제공


2013년 경남 고성군의 한 양계농장. 주인 이 모씨는 우체통에서 꺼내본 두툼한 편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농장 입구에 세워둔 '○○○농장'이란 나무간판이 저작권을 침해했으니 손해배상소송은 물론 형사고소를 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H 법무법인 명의의 이 편지는 그러면서 피해보상 합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지인이 간판을 만들어주면서 쓴 글꼴(폰트)이 권리자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양계장 영업에 도움이 되라고 홈페이지를 만들어줬는데 여기에 간판 사진을 올린 게 화근이었다.



놀란 이 씨는 농진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합의금을 물지 않았고 법무법인에서도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저작권 걱정 없는 일반적 글꼴로 새 간판을 세웠다.

글꼴만이 아니다. 15일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저작권법의 맹점을 파고드는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무심코 음악파일을 인터넷 포털에 올린 청소년에게 법무법인이 소송 으름장을 놓으면서 합의를 종용하는 식이다. 권리자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제3자가 소송을 낼 수 있는 비(非) 친고죄 방식 때문이다. 이런 일에 매달리는 로펌을 '법(法)파라치'나 '저작권 사냥꾼'으로 부른다.



이 같은 저작권 분쟁 피해를 막기 위해 저작권법이 수술대에 올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6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비친고죄 적용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심의한다.

여당 교문위 간사인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 법안은 권리자가 대형연예기획사나 기업 등 법인이면 친고죄를 적용해 소송요건을 엄격히 하도록 했다. 개인저작자의 권리침해는 종전처럼 비친고죄를 유지했다. 소송능력을 가진 법인보다는 시간과 비용 면에서 소송을 감당하기 어려운 개인저작자(권리자), 무차별 합의금 장사의 타깃이 될 수 있는 이용자를 보호하는 취지다.

야당에서도 김태년·이상민 의원 등이 비슷한 법안을 냈다. 권리침해가 대규모인 경우만 비친고죄를 적용하거나(김태년) 특정 범죄는 친고죄로 정해 법파라치 로펌을 근절하는(이상민) 등이다. 공통점은 비친고죄 적용 범위 축소다.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어 4월 국회에 교문위 전체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김희정 새누리당 의원/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저작권법상 비친고죄 규정 자체는 권리 침해시 신속한 대응을 가능토록 한다. 저작권자인 개인이 법적대응 절차를 밟는 사이 시간·비용이 들고 피해도 확산되는 것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 제3자가 소송할 수 있게 했다.

여야는 이 같은 취지와 다르게 저작권법이 악용되고 있다고 본다. 일부 로펌은 저작자도 모르는 침해사례를 찾아내 '합의금 장사'에 나선다. 글꼴의 경우 '한글과컴퓨터' 등 소프트웨어가 정품이라면 포함된 글꼴 사용은 저작권법상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일반인이 법률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한다.

합의금 100만원을 요구하고 학생은 20% 할인해주는 계산법도 있다. 저작권법 침해시 형사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소송' 운운에 당황한 일반인으로선 100만원 미만이면 귀가 솔깃할 금액이다.

로펌은 이렇게 받은 합의금을 저작자와 배분한다. 때론 저작자도 모르게 소송을 추진해 합의금을 챙긴다. 학생할인의 존재에서 드러나듯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들이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돼 왔다. 2007년엔 인터넷에서 소설을 다운받아 고소당한 고교생이 부모의 꾸중을 듣고 자살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은 "개인저작물을 단순히 이용한 일반인들에게 고소를 남발하고 과도한 금전적 합의를 유도하는 것은 비친고죄 규정 악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와 관련 토론회를 주최하고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이익이 우선해야 하는 법인데, 현재는 처벌이나 단속 위주"라며 "법파라치 로펌이나 사이비 저작권단체의 횡행으로 저작자 위임 없이 내용증명을 보내 합의금을 받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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