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류현진을 부활시킨 ‘의사’ 프랭크 조브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4.03.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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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존 서저리'로 투수 재활길 연 스포츠의학 개척자...명예의 전당 헌액 안돼 논란

↑'토미존 서저리'로 투수들에게 재활의 길 열어준 故프랭크 조브 박사. ⓒ사진 = OSEN↑'토미존 서저리'로 투수들에게 재활의 길 열어준 故프랭크 조브 박사. ⓒ사진 = OSEN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 피터 개몬스(Peter Gammons, 69)이다. 보스턴 글로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스포팅 뉴스 등을 거쳐 세계적인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을 대표하는 기자로 20년 이상 활약한 그는 2009년을 마지막으로 ESPN을 떠나 MLB Network와 MLB.com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예리한 분석이 담긴 따뜻한 글을 쓰고 있다.

ESPN의 간판 프로인 ‘베이스볼 투나잇’, 스포츠 센터’를 이끈 방송인이기도 한 그는 베이스볼 칼럼니스트로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돼 있다.



피터 개몬스가 야구와 메이저리그 발전에 기여한 공은 대단하다. 1989, 1990, 1993년 3차례나 ‘올해의 최고 스포츠 기자(National Sportswriter of the Year)에 선정됐다. 쿠퍼스 타운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글쓴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피터 개몬스가 아니다. 지난 3월6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프랭크 조브 박사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터 개몬스는 올해도 예외 없이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방문해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와 류현진을 평가하며 칭찬했다. 관련 기사에는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 칼럼니스트라는 소개가 이어졌다.

↑ 류현진 ⓒ사진=OSEN↑ 류현진 ⓒ사진=OSEN
그런데 만일 프랭크 조브 박사가 없었다면 류현진이 투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타고난 야구 소질을 고려하면 투수 대신 4번 타자를 하고 있었을지는 모르나 동산고 2년 초 왼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인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1년간 재활을 거쳐 다시 마운드에 돌아온 류현진이다. 이 수술로 그는 고향팀 SK의 지명을 받지 못하는 좌절을 겪으며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1974년 스포츠 의학 사상 최초로 투수 토미 존(Tommy John)에게 다른 팔에서 떼 낸 인대를 팔꿈치에 접합 시키는 수술을 성공시켰다. 이후 그는 더 이상 투수를 할 수 없는 부상을 당한 투수들이 수술과 재활을 통해 야구 경력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에게는 스포츠 의학의 개척자(pioneer)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절망에 빠진 투수들의 구세주로 영원히 인정받을 것임이 분명하다.

야구인이 아니면서 현대 야구 발전에 프랭크 조브 박사 이상으로 위대한 기여를 한 인물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데 야구 칼럼니스트 피터 개몬스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어도 프랭크 조브 박사는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에 ‘기자’는 있어도 ‘의사’는 없기 때문이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지난 해 여름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식에 앞서 쿠퍼스 타운에서 열린 축하 경기에 3번 타자로 나섰다. 1번 타자는 폴 하겐, 2번 타자는 톰 치크의 부인인 셜리 치크였다.

폴 하겐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야구기자, 톰 치크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의 방송인이었는데 이들은 작년 명예의 전당(언론인 부문)에 입성해 영원히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러나 프랭크 조브박사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가 그를 존중하고 인정해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프랭크 조브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를 반드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1965년 동료인 로버트 켈란과 함께 ‘스포츠 의학(sports medicine)을 창시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변호사의 골절과 스포츠 선수의 골절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프랭크 조브박사도 그 물음에 당황해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고 하는데 그 답이 현실에서 나타났다.

대단한 투수 출신으로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수술을 받기도 했던 오렐 허샤이저 현 LA 다저스 해설가가 ‘그는 야구 역사상 그 누구보다 많은 승리와 세이브, 그리고 타석을 만든 위대한 인물이라고 존경심을 나타냈다.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30세의 나이에 팔꿈치 통증 때문에 은퇴한 위대한 투수 샌디 쿠팩스 시절 ‘토미 존 서저리’가 있었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어떤 변화가 왔을까.

LA 다저스에서 활약한 샌디 쿠팩스가 은퇴한 해가 1966년이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이 1972년이었다. 프랭크 조브박사의 ‘토미 존 서저리’는 샌디 쿠팩스에게는 안타깝게도 1974년 첫 성공을 거두게 됐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스포츠 의학의 대부(Godfather of Sports Medicine)’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야 한다.

2013년까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선수 237명, 감독 20명, 심판 10명, 그리고 개척자들과 구단 프런트 33명 등 모두 300명이다.

기자 방송인 등 언론인 부문은 따로 있다.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LA 다저스 경기를 해설하는 빈 스컬리는 방송인으로 1982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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