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규제는 대박이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정치부장 겸 경제부장 2014.03.2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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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좋은 규제는 대박이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 끝장 토론'이 7시간이 넘도록 TV로 생중계됐다.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이후 처음이다.

대통령과 검사들이 대본도 없이 토론으로 '맞짱'을 떴던 토론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생방송에 인색했던 박대통령이 7시간이 넘도록 TV화면을 떠나지 않은 것은 것은 `암덩어리' 규제와 싸우는 비장함을 보여주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말기 암덩어리와 싸우는 환자들의 상태변화는 '충격(Shock)- 부정(Denial)- 저항(Resistance) - 수용(Acceptance)'의 네 단계를 거친다.
집권하면 거의 예외 없이 규제완화에 나선 위정자들도 비슷했다. 초기엔 규제들에 충격 받고 거세게 맞서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 대개는 '현실의 벽'을 수용하고 타협한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민원인'들 앞에서 자기 수하의 공무원들을 공개적으로 야단친 이례적인 '토크쇼'는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진 또 하나의 승부수였다.

'끝장토론'에까지 이른 대통령의 진정성은 이제 국민들에게 어느정도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대통령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실행'이다. 특히 대통령의 '폭풍 관심'이 가져올 압박이 오히려 매끄러운 실행을 가로막고,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이건 경제의 영역이건, 한쪽 방향으로 일방적인 '쏠림'현상이 나타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자칫 규제완화가 '규제 마녀사냥'의 광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개별 기업들의 '민원 끼워넣기'가 한 예이다.
얼마 전 국내 언론사는 학교 앞 호텔허가 문제를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들고 나왔다. 한 중소 비즈니스 호텔 사업가의 울분이 사례로 집중 부각됐다. 이 언론사가 출자한 방송사의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이 경복궁과 맞붙은 고등학교 앞에 호텔을 짓기 위해 끊임없이 로비를 벌여온 이야기는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날 토론에서도 학교앞 호텔 건축 불허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현장에 가봤더니 상당히 유해한 전단지들이 많았다"고 되받아치는 장면이 신선했다. 이처럼 한발 더 들어가보면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사안들인데도 전형적인 유착형 '민원끼워넣기'가 대통령의 곁을 파고 들고 있다. 대통령 앞에서 거론됐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건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규제가 모두 암덩어리인 것도 아니다.
국내 디젤 자동차 시장을 유럽 자동차들이 주름잡고 있는 것은 일찌기 경유차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한 탓에 유럽 메이커들이 타 국가 기업들에 비해 기술개발에 한발 앞서 갔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한국의 정유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제품의 9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며 수출 효자 산업으로 성장한 것도 엄격한 환경기준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얼마전 층간소음 규제가 강화된 이후 소음방지 기술이 개발되고 관련 시장이 새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처럼 규제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킨 사례는 동서고금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규제가 생기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점으로 인한 이른바 '지대추구'의 폐해를 막기 위한 규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보호장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환경규제...
이런 것들까지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휩쓸려간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 많은 비용을 치를 수 밖에 없다.

'끝장 토론'에서 제대로 건진 건, 규제완화 전쟁의 결의가 아니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진일보한 '규제관'이다.
규제완화라면 한국보다 한 수 앞서간 영국의 스콧 와이트먼 주한 대사는 이날 토론에서 "좋은 규제는 창조경제를 위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박대통령 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좋은 규제는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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