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윤태호의 '미생'이 인기를 끄는 이유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14.03.15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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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윤태호의 '미생'이 인기를 끄는 이유


직장인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바둑판에 놓이는 바둑돌 하나가 어떻게 우리 인생의 순간과 맞먹을 수 있는지와 대비시키며 리얼하게 그린 윤태호의 ‘미생’(위즈덤하우스)이 60만부가 팔렸다. 이 기록만 보면 출판만화시장이 아직도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출판만화시장은 처절하게 추락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등 만화 전문 출판사 ‘빅3’가 일본의 인기 만화를 팔아 수익을 챙기면서 국내 작가들을 키우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서찬휘 만화칼럼리스트가 월간희망 만화 무크 ‘보고’ 창간호(휴머니스트)에 발표한 최근의 만화 베스트셀러 통계에 따르면, 이들 3사가 베스트셀러에 올린 책의 비율은 전체의 57.7%나 된다. 3사가 해당 기간 낸 베스트셀러는 모두 116권인데 이중 일본만화가 108권으로 93.1%나 차지하고 있다.



출판만화시장이 사실상 고사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인터넷을 새로운 유통 기지로 삼은 웹툰은 활성화되고 있다. 웹툰 독자가 월 1천만 명을 넘고, 네이버의 경우 방문자의 22% 정도가 ‘네이버 만화’를 찾고 있을 정도(2012년 닐슨코리아 조사)니 말이다. 강풀, 강도하, 윤태호, 양영순, 조석 등 스타만화가들의 작품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대중매체인 웹툰은 바야흐로 새로운 문화 장르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굳혀가고 있다.

출판만화와 웹툰은 문법부터가 달라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출판만화가 선의 밀도가 높은 작화의 완성도에 중점을 두는 반면, 웹툰은 잘 읽히는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둔다는 점이다. 박기수 한양대 교수는 ‘보고’에 발표한 ‘웹툰, 가장 격렬해야할 스토리텔링의 장(場)’에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story)’뿐만 아니라 ‘말하기(telling)’도 텍스트 향유의 지배적인 요소”가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웹툰을 출판만화로 바꾸려면 두 장르의 문법을 잘 아는 ‘번역가’가 개입해야할 만큼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일반 단행본이라고 다르지 않다. 영상세대를 의식하다보니 베스트셀러의 목록은 구어체 문장의 책들이 휩쓸고 있다. 구어적인 텍스트가 아니면 대중이 읽지 못해 글에 소리까지 담아내야 하는 시대이다 보니 ‘전자(電字)시대’가 아니라 ‘성자(聲字)시대’라는 말까지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웹툰을 있는 그대로 출판만화로 펴내 유일하게 성공한 웹툰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미생’이다. ‘미생’은 영상정보의 치명적 약점인 금방 본 것도 잊어버리는 정보의 알츠하이머(치매) 효과’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가독성과 조회수만 의식하다보면 독자의 뇌리에 각인되는 힘을 잃는다. 이 같은 명백한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웹툰 자체의 생명력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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