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진주' 윤진숙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4.02.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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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트] 당신의 인맥 수는 최고 150명 '던바의 수'

'진흙 속 진주' 윤진숙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처음 본 것은 2008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였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가 해양수산부를 폐지키로 한 것이 타당한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이었던 윤 전 장관은 개발원 대표 자격으로 발제를 맡았다. 윤 전 장관은 개발원 전체가 매달려 만든 논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의 입으로 전달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컨텐츠들을 보고 윤 전 장관을 좋게 봤다. 그리고 윤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수첩'에 이름을 올렸다.



5년 뒤 윤 전 장관은 박근혜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됐다. 적지 않은 이들이 '자질 부족론'을 들어 반대했지만 결국 '여성 장관론'에 밀렸다. '진흙 속 진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에서는) 긴장을 해서 말을 잘 못 했을 뿐 실력은 있다"며 "일단 한번 맡겨보자"고 했다. 일종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불과 1년도 채 안 돼 '실패'로 돌아갔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 잇단 실언으로 구설에 오른 윤 전 장관은 결국 지난 6일 취임 295일 만에 경질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윤 전 장관이 박 대통령의 인물 리스트에 오른 것에 있지 않다. 윤 전 장관이 박 대통령의 리스트에 오른 유일한 또는 최선의 여성 해양전문가였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자체가 박 대통령의 책임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챙길 수 있는 인맥의 범위에 한계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수는 대개 150명 안팎이다. 이것이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다.

로빈 던바(Robin Dunbar)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교수는 침팬지와 원숭이 등 영장류 30여종의 사교성을 연구하다가 대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피질은 대뇌 반구(半球)의 표면을 덮고 있는 층으로, 학습 감정 의지 지각 등 고등정신 기능을 관리하는 영역이다.


던바 교수는 침팬지, 원숭이 등 영장류 30종을 대상으로 한 뇌의 부피와 집단 규모의 상관성 연구를 통해 사람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집단의 최대치가 150명이라고 발표했다. 페이스북 친구의 숫자가 4000명에 달하더라도 진짜 의미 있는 친구는 각자 150명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다.

던바 교수에 따르면 한 개인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가 150명을 넘어서면 각자 시간의 42% 이상을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각 개인의 생활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문화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원시 부족사회에서 씨족의 규모도 대략 150명 수준이었다.

이는 현대사회의 기업 경영에도 마찬가지도 적용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그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저서 '티핑 포인트'에 따르면 회사의 직원이 150명을 넘어서면 조직에 구석구석 손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런 경우 회사를 2개 이상의 조직으로 쪼개기 전까지 1인당 생산성은 크게 낮아진다.

한 사람이 챙길 수 있는 사람의 수에 150명 정도의 한계가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최대한 좋은 인재를 선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인재의 추천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음 해수부 장관은 '수첩' 밖에서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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