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머리' 관객 들어오면 어찌나 긴장 되는지···"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4.01.29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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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문화人] 7. 이정아·남유리 공연장 하우스매니저

편집자주 문화계의 저변이 확대되고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직업군도 다양해졌다. 공연·미술·음악·출판 등 각 분야의 이색업종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이 느끼는 '특별한' 일의 매력에 대해 들어본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장에서 관객 서비스, 안내자 통솔 등을 총괄하는 하우스매니저 남유리씨(왼쪽)와 8년간 하우스매니저로 일했던 이정아씨. 이들은 공연시작 전 약 30분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관람객을 응대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연계의 보석 같은 인재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장에서 관객 서비스, 안내자 통솔 등을 총괄하는 하우스매니저 남유리씨(왼쪽)와 8년간 하우스매니저로 일했던 이정아씨. 이들은 공연시작 전 약 30분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관람객을 응대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연계의 보석 같은 인재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


"'올봄 유행스타일 당고머리', 이러면 저희는 바~로 긴장합니다. 일명 '똥머리'라고 하죠? 시원하게 머리를 올리신 분들이 공연장에 들어서면 걱정되는 게 사실이에요. 모자 쓰신 분들이 오셔도 마찬가지고요."

남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걱정하는 이들은 누구? 바로 공연장 하우스매니저(house manager)다. 앞사람의 머리가 너무 커서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 챙이 있는 모자를 쓴 사람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 등 극장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불만과 요구에 대응해야하는 이들. 보통 공연시작 30분 전인 오후 7시30분부터 8시까지 약 30분간 초집중력을 발휘해 고객을 만나는 공연계 보석 같은 인력들이다. 여기서 '하우스'는 공연장을 뜻하는데, 하우스매니저는 그야말로 극장 내 로비와 객석의 총괄책임자로서 객석안내자들을 지휘하며 관객서비스와 공연진행을 챙긴다.



서울 예술의전당(이하 전당)에서 하우스매니저로 8년간 일한 이정아 매니저(37)와 지난해부터 투입된 남유리 매니저(27)를 만났다. 전당 입사 10년차인 이 매니저는 줄곧 하우스매니저로 일하다 2012년부터는 대관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베테랑선배로서 수시로 후배들에게 조언하며 고객응대에 대한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외모도 말투도 시원시원한 그는 하우스매니저로 일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8년 동안 정말 많이도 울었어요. 저는 관객들을 도와주려고 있는 사람인데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야단맞고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뭘 잘못 했기보다는 극장이 주장하는 원칙에 (고객들이) 화가 났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조금씩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고객을 대하는 방법에도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고요. 정말이지 당고머리 하신 분에게 가서 '저, 머리 좀 풀어주시겠어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하하."



선배의 이야기에 남 매니저도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후배들에게 재치 있는 입담으로 경험담을 자주 이야기해준다는 이 매니저는 유머와 센스를 담은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했다. 그는 "무전기가 익숙하지 않은 교육생들을 위한 무전기 끼고 받아쓰기, 신속한 고객응대를 위해 스피드 퀴즈게임, 좌석 빨리 찾기 티켓게임 등을 만들었다"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응급처치도 교육한다"고 말했다. 전당 객석안내자는 약 100명으로 11개월간 일 할 수 있고, 이중 약 한 달은 공연기획·무대·글쓰기·면접·고객서비스 등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남 매니저는 "졸업 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유학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중 전당에서 객석안내자로 일하게 됐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게 됐다"며 "기대감에 부풀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매일 마주하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하우스매니저들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 먼저 출근시간이 오후 1시란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그만큼 퇴근은 늦고, 크리스마스나 휴일에는 더 바쁘다. 대부분의 공연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나고 오페라는 3시간이 훌쩍 넘는 경우도 있으니 자정 무렵에나 퇴근할 때가 많다. 출근을 하면 그날 공연의 특이사항과 객석안내자들에게 필요한 비품을 확인한다. 오페라극장, 콘서트홀의 극장별로 근무자를 배치하고 공연 스태프회의 준비도 한다. 오후 7시부터는 공연장에서 본격적으로 고객을 만날 준비를 한다.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 원칙만 가지고 되랴. 안내를 하다보면 간혹 오해를 사기도 하고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고객 불만사항이 뭔지 묻자 두 사람 모두 "미취학아동 손님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남 매니저의 설명이 이어졌다.

"만 7세 미만은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안내가 되어있고, 부모님들도 알지만 일단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달랐다'며 입장하겠다는데, 처음엔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이가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상처받았으니 아이에게 사과하라며 호통을 치시기도 해요."

이 매니저는 "예전에는 공연이 시작한 다음에 도착해서 빨리 공연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안내에 따라 다음 입장 시간까지 잘 기다려주신다"며 "그래도 미취학아동 입장 건은 변하지 않는데,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과 자식사랑이려니 하고 마음만큼은 이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주어진 원칙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해결되지 못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응대를 하면 고객들도 알아주시더라고요. 역시 진심은 통하는 거겠죠? 하하."(남 매니저)

올해로 예술의전당 입사 10년차 이정아씨(오른쪽)와 2년차인 새내기 하우스매니저 남유리씨가 고객서비스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올해로 예술의전당 입사 10년차 이정아씨(오른쪽)와 2년차인 새내기 하우스매니저 남유리씨가 고객서비스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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