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도로명주소, 무리한 전면시행 재고해야

머니투데이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 2014.01.2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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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도로명주소, 무리한 전면시행 재고해야


도로명주소 사업은 지난 1997년부터 시작됐다. 법적 주소 교체는 너무 혼란스럽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당초 계획은 길 찾기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생활주소로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이 2000년대 중반부터 예산낭비사업으로 지목돼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10년간 1500억 원 남짓 예산을 들였는데도 전혀 성과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무도 쓰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재검토하는 대신 아예 법적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꾸는 법률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안 쓰인다고 비판하니, 강제로 쓰게 만들어주겠다고 한 꼴이다.

그래서 2006년 도로명주소법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본래 2012년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규정돼 있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돼 법을 개정해 시행시기를 올해로 연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올해부터 도로명주소제도가 전면 시행됐다. 법적으로 기존 지번주소는 폐지되고 최소한 공적 서류에는 반드시 도로명주소를 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11월 정부 조사에서도 우편물의 새주소 사용률이 5분의 1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들은 의무적으로 새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더욱 황당한 것은 올해 정부 성과계획서에도 도로명주소 활용도 목표치가 고작 45%로 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법 시행 이후에도 실제로는 국민들이 구주소를 주로 사용할 것이라고 정부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법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며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본래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국민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로 바뀐 셈이다. 국민은 그저 따라오면 된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도로명주소의 무리한 전면 시행으로 인해 상당한 사회적 불편과 비용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국민들은 15년 이상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인 이 사업을 통해 우리가 얻는 편익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말한 새주소 시행에 따른 연간 3조4000억원의 사회적 효과에 공감하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새 주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부동산 위치 표시는 기존 지번으로 계속 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소가 이원화되는 점, 실제 길 찾기의 출발점이 되는 동·리 이름을 빼버려 오히려 위치 예상이 안 되는 점 등이다.

갑자기 인위적으로 붙여진 이상한 길 이름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한편, 기존 지명에 담긴 문화·역사성을 가벼이 여긴 데 대한 비판 역시 거세다. 또한 인터넷 길 찾기가 일상화된 지금 이런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불편을 감수할 만큼 편리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은 더 강해졌다.

이제라도 정부는 실정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법 규정만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도로명주소 체계 설계에 참여한 전문가도 이 제도는 "다음 세대를 위한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 무리하게 강제 시행하기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확산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민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불편과 혼란을 줄여가며 차근차근 진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견과 권익이다.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새 주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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