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가난해도 자유로운 한 해를 바라며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4.01.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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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48>

[박정태 칼럼]가난해도 자유로운 한 해를 바라며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내가 가장 많이 지출한 비용은 책값이었다. 하는 일이 늘 책과 관련된 것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막상 작년에 산 책들을 휘 둘러보니 제대로 읽은 것은 반의 반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프란츠 카프카의 표현처럼 "내면의 얼음바다를 깨부수는 도끼 같은" 책을 만났다는 것인데, 박재동 화백이 펴낸 '아버지의 일기장'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저자는 박 화백의 아버지로, 무척이나 가난했던 1970년대와 80년대의 고단했던 삶을 담담하게 일기체 형식으로 들려준다. 하루하루가 절박하리만큼 힘겨웠지만 그렇게 어려웠기에 가족간의 사랑은 더 깊고 뜨겁게 느껴진다. 1972년 2월 6일자는 이렇게시작된다.



"어제는 기다리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불량만화 단속 관계로 즉결에 간 아내는 5시가 넘어도 돌아오질 않고, 큰아이 시험 발표는 전화를 몇 번 걸어도 깜깜무소식. 날씨마저 궂은비가 내려 우울한 심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버지는 페결핵으로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만화가게를 열어 빙수까지 팔고 있지만 생활은 곤궁하기만 하다. 그래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소박한 꿈 역시 누구 못지않게 간절하다. 다행히 이날 일기는 해피엔드로 끝난다.



"아이 하나가 뛰어와서 전하는 소식, 의심할 정도의 희소식이 아닌가? 정말 믿어지지 않는 꿈 같은 장면이었다. 금년에는 우리집에 서광이 조금 비치는 듯하다. 큰것은 그렇게도 동경하던 서울대학교에, 둘째도 남고에 무난히 합격했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한동안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새해 덕담처럼 오갔다. 이 말에는 무조건 부자가 좋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지, 또 그게 옳은 일인지는 묻지 않는다.그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라는 기원뿐이다. 그래서 모두들 마법에 걸린 듯 하루 종일 돈을 벌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일종의 부자 신드롬 같은 이 무서운 증상은 마음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아주 가혹한 질병이다.

물론 부자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좀더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적어도 의식주에 관한 한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좋은 것은 여기까지다. 경계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 우선 부자가 되면 사람이 오만해질 수 있다. 성격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돈이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당당함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돈으로 뭐든 얻을 수 있게 되면 겸손해지는 법을 잊게 된다.


"이 모든 수고와 부산함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탐욕과 야심을 품고, 부와 권력과 명성을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사람은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인간이 얼마나 부유한가는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 있다"고 갈파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돈 없이도 얼마든지 넉넉해질 수 있다. 그게 진짜 부유함이고, 돈으로부터의 자유다. 어린 시절 운동화 밑창이 닳을까 봐 축구시합에서 골키퍼로만 뛰었을 정도로 가난했던 알베르 카뮈는 '안과 겉'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도 나는 파리에서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을 볼 때면, 그것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격원감(隔遠感)과 더불어 일말의 동정심을 금치 못한다. 재물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자유가 내게는 아까운 것이다. 가장 풍성한 호화로움이 나에게는 언제나 일종의 헐벗음과 일치하곤 했다."

그렇다. 부유함이 행복이 아니듯 가난이 불행은 아니다. 카뮈는 가난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은 원망이 아니라 오히려 변함없는 마음과 묵묵한 끈기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권리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결론은 똑같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나 재물이 아니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소박하게 살아가면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올 한 해는 나부터 좀 넉넉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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