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별에서 온 그대>는 표절인가

머니투데이 이지혜 기자 2014.0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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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ze] <별에서 온 그대>는 표절인가


1609년 9월 25일, 광해군 1년.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다.” < 조선왕조실록 > ‘광해군일기’에 적힌 기이한 현상에 관한 기록이다. 향후 이 기괴한 사건은 광해군 때 목격된 ‘조선의 UFO 사건’이라며 두 창작물의 모티브가 되었다. 최근 표절 논란이 벌어진 SBS < 별에서 온 그대 >(이하 < 별그대 >)와 만화 < 설희 >다. < 별그대 >가 방영된 후, < 설희 >의 작가 강경옥은 12월 20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 별그대 >가 < 설희 >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지은 작가는 “‘광해군일기’의 UFO 기록은 한 사람만 독점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며, 어떻게 이 소재를 드라마로 발전시켰는지 상세히 설명했고, < 설희 >를 본적도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강경옥 작가는 < 별그대 >가 < 설희 >를 표절했다는 근거로 “역사적 사건 인용, 불로, 외계인(외계인 치료), 피(타액)로 인한 변화, 환생, 같은 얼굴의 전생의 인연 찾기, 전생의 인연이 같은 직업인 연예인, 톱스타 등 8개 이상의 클리셰들이 한군데 몰려 있다”며 설정과 캐릭터가 유사한 것을 표절의 근거로 법정 대응 의사를 전달했다. 강경옥 작가가 언급한 것 이외에도 돈을 밝히는 어머니, 설희의 정체를 아는 변호사 등도 유사한 점이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표절에 대한 기준은 있다. “법률적으로 표절은 저작권 침해란 말로 쓰이며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증거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김용욱 감정포렌식팀장은 설명한다. 다시 말해 주제나 플롯, 캐릭터의 전형적인 설정 등 아이디어 차원의 장치로는 표절로 인정받을 수 없고, 표현이 유사해야 한다. 가령 과거 만화 < 바람의 나라 >의 저자 김진이 MBC < 태왕사신기 >에 대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들의 저작물은 고구려라는 역사적 배경, 신화적 소재, 영토 확장이나 국가적 이상의 추구라는 주제 등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를 공통”으로 하지만 “등장인물이나 주변인물과의 관계설정, 사건전개 등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결이 났었다. 영화 < 클래식 >의 제작사에서 낸 저작권 침해로 인한 KBS < 사랑비 >의 방영 금지 가처분 사건도 동일한 사유로 기각됐다. 법원은 기각의 이유에 대해 “설정이나 소재를 특정인에게 독점권으로 부여하면 장래에 다른 창작자가 창작할 기회를 박탈하게 되므로, 소재는 만인의 공유에 둔다”고 설명하고 있다.

[매거진 ize] <별에서 온 그대>는 표절인가
또한 < 별그대 >와 < 설희 >는 강경옥 작가의 말처럼 여러 가지 설정이 유사하다. 그러나 1회에서 도민준(김수현)이 400년 이상 살아온 외계인인 것을 밝히고 연예인인 천송이(전지현)와의 전생의 인연과 로맨스에 집중하는 반면에, < 설희 >는 외계인의 피로 400년 동안 불로불사했던 설희의 미스터리가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데 중점을 둔다. 불로불사의 존재라는 사실을 밝히는 시점이 달라지면서 내용 전개에 차이가 생긴다. 또한 무거운 분위기의 < 설희 >와 로맨틱 코미디인 < 별그대 >는 장르적인 차이 때문에 극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사건의 전개 과정과 대사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강경옥 작가가 법정 대응을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증거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법적 표절 판정 여부가 논란을 모두 잠재우지는 못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구약성경 전도서 1장 9절에 나오는 이 말은 종종 100퍼센트 새로울 수 없는 창작물을 위한 가장 좋은 알리바이가 되어왔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에 과연 내 것이 온전히 새로운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김용화 감독은 영화 < 미녀는 괴로워 > 제작 당시, 설정이 유사한 일본 만화 < 미녀는 괴로워 >와의 표절 논란을 피하기 위해 아예 작품 판권을 구입한 바 있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더는 표절이 자신의 떳떳함만으로 증명될 수 없는 시대를 사는 한 방법인 건 분명해 보인다. 강경옥 작가는 블로그를 통해 같은 소재에 대한 작품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다. 어쩌면 박지은 작가에게 필요했던 건 < 설희 >를 보지 않은 떳떳함이 아니라, 작품에 들어가기 전 비슷한 소재의 < 설희 > 같은 작품을 확인해보는 치밀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 아래 그래도 조금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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