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도 150만원 패딩, 캐나다구스는 '덕다운'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3.12.3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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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2~3배 고가 브랜드 도넘은 인기…능력 과시욕구가 무리한 소비 불러

(왼쪽부터)노스페이스 '히말라얀' 점퍼, 캐나다구스 '익스페디션' 파카, 몽클레르 '모카신' 점퍼(왼쪽부터)노스페이스 '히말라얀' 점퍼, 캐나다구스 '익스페디션' 파카, 몽클레르 '모카신' 점퍼


#워킹맘 이지영씨(45)는 요즘 고민이 많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이 150만원짜리 패딩점퍼를 사달라며 며칠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70만원짜리 패딩점퍼를 사준지 1년도 안돼 더 비싼 옷을 사달라기에 따끔하게 혼을 냈다. 하지만 아들은 프리미엄 패딩점퍼를 입지 않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며 막무가내다.

직장에 다니느라 평소 살뜰히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계속 모른척하자니 마음이 무겁다. 이씨는 "중고생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아이템이 패딩점퍼와 휴대폰, 헤드폰"이라며 "(프리미엄 패딩이) 학생이 입기에 지나치게 비싸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사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캐나다구스', '몽클레르' 등 프리미엄 패딩점퍼 구매 열풍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강남 부유층을 타깃으로 소량만 수입되던 프리미엄 패딩점퍼가 지난해말부터 '강남 패딩', '어른 노스페이스' 등으로 입소문을 타더니 올해는 직장인은 물론 10대 중고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갖고 싶은 제품 1순위로 떠올랐다.

프리미엄 패딩점퍼 가격은 1벌에 100만~300만원대에 달한다. 가격이 비싼데도 소비자들이 서로 사겠다고 줄을 서면서 '캐몽'(캐나다구스와 몽클레르의 앞자를 딴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1년전부터 물량 확보 전쟁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티카·노스페이스·캐몽'…프리미엄 패딩의 역사

고가의 패딩점퍼가 유행하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티카'가 원조다. 주로 노랑, 초록, 파랑 등 원색 컬러가 믹스된 이 점퍼는 앞뒤에 브랜드 영어명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었다. 가격은 20만∼30만원대로 당시 물가나 옷값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쌌다.

2000년대말 '노스페이스'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저 25만원에서 최고 70만원대로 구성된 이 브랜드의 패딩점퍼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교복패션'이 됐다. 2011년 겨울에는 점퍼 가격에 따라 '저가=노예, 중간=평민, 고가=왕족'이라고 계급을 분류한 인터넷 게시물이 나돌았다. 이 브랜드 패딩점퍼가 입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옷을 빼앗거나 훔친 10대들이 줄줄이 구속돼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는 '노스페이스'보다 2∼3배 비싼 '캐다나구스', '몽클레르'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 이들 브랜드는 점포별로 월평균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부모를 졸라 고가의 패딩을 구매하는 중고생들이 늘면서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정도로 비싼 제품)로 등극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패딩점퍼는 단가가 높아 패션회사의 1년 매출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아이템"이라며 " 디자인과 소재에 공을 들여 내놓은 제품들이 캐나다구스, 몽클레르 등 본사 차원의 마케팅이 전혀 없는 해외 브랜드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세태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몽클레르 2013 F/W 컬렉션/사진제공=신세계인터내셔날몽클레르 2013 F/W 컬렉션/사진제공=신세계인터내셔날
◇'비싼 옷=능력?'…우리들의 일그러진 소비인식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에 열광하는 것은 겉옷으로 능력이나 계층을 드러내려는 인식이 강해서다. '난 비싼 옷을 살 수 있는 능력있는 고소득층'이라는 자기과시 수단으로 패딩점퍼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녀가 입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던 '몽클레르' 패딩점퍼가 대표적인 사례다. '몽클레르'는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낮았지만 단숨에 선호 브랜드로 바뀌었다. 대통령 손녀와 같은 '로열패밀리'는 될 수 없지만 같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은 소비자들이 그만큼 많았다.

중고생들이 수백만원짜리 패딩점퍼에 집착하는 이유도 성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들 다 있는 '교복패딩'은 기본이고, 특별한 제품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100만원짜리 책가방, 50만원짜리 백금샤프 등이 유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유통망이 발달하고 실질 소득이 늘면서 해외 고가 브랜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역량이 부족한 소비자일수록 연예인을 따라하거나 유행 브랜드에 집착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부모들이 합리적인 소비의식을 가져야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며 "자녀가 기죽을까봐 무조건 사치품을 사주기보다 자질·인성 교육으로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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