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2013.12.0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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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의 브리핑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일이다. 모 부처 장관실에서 한 공공기관장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다. 공공기관장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인데 임명장은 통상 주무부처 장관이 준다. 대통령이 공공기관장 임명장까지 일일이 나눠줄 만큼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장관은 산하기관장보다 높다. 대통령 '대신' 임명장을 주는 국무위원이면서 공공기관장 제청 권한을 갖는다. 보통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의 고개가 최소 1도라도 더 숙여진다. 악수도 임명장을 건넨 이가 먼저 청한다. 임명장을 받아든 이는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민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의전이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둘은 대등했다. 아니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임명장을 받아든 기관장이었다.

장관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목례를 했다. 그 기관장은 전직 의원이었고 정권 실세였다. 한마디로 장관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제청권자인 장관에게 인사권한은 없었다. 오로지 청와대만 바라보면 됐다. 그럴수록 부처의 산하기관 장악력은 작아졌다.



반대로 공공기관장의 위상은 높아졌다. 예전엔 부처 차관이나 1급이 가던 곳에 전직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다. 새 정부 들어서도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논공행상'은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현실화됐다. 그나마 뜸을 들이는 기술은 늘었다. 정권 출범 직후 잔치판을 벌리고 전리품을 나눠갔던 '저급'은 벗어났다. 1년 가까이 인내하며 참아준 공신에게 진짜 선물을 하사하는 모양새다. 공신들에게 인내와 절제를 가르치는 '품격있는(?)' 공공기관장 인사인 셈이다.

마사회장, 도로공사사장, 지역난방공사사장 등 인사가 줄줄이 이어지자 '친박 낙하산' 비판이 일고 있다. 전문성과 무관한 보은 인사라는게 논란의 핵심이다.


'품격있는' 낙하산을 했으니 전문성 문제도 한발 양보할 수 있다. 3선 의원이면 대권도 꿈꾸는 데 3선 의원 출신이 도로공사 사장을 맡는 게 뭐가 문제냐며 애써 이해하자. 대기업 출신이 공기업 사장을 간다는 데 정치권에 몸 담았었다는 이유로 전문성 운운하긴 좀 그렇지 않냐는 논리도 그냥 수긍하자.

문제는 지금 필요한 '실력'이 무엇인지다. 정부는 이제 공기업에 수익과 효율을 바라지 않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최근 "공공기관마다 고유한 사업이 있지만 지금은 부채 관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황찬현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자리에서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아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주문은 주무부처 장관의 입을 통해 공공기관장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전 정부처럼 공공기관장이 장관을 아랫사람 대하는 듯 했다간 윗분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지시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진짜 실력이고 전문성이다. 시험대는 취임 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 등과 맞물려 시기적 여건이 안 좋을 때, 이목은 이들에게 집중된다.
공기업 구성원들에게 혹여 '낙하산 파티'가 파티를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으려면 명을 받자마자 "파티는 끝났다"고 복명복창하는 게 먼저다. 거센 노조의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 지에 우선 관심이 쏠린다. 노조의 반발없이 취임한다면 그것 자체가 개혁의 후퇴를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의 취임 일성이 뭘까.
현 정부 공기업 개혁의 성패는 이들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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