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증여신고하고도 마음 불편한 납세자

머니투데이 왕현정 현대증권 투자컨설팅센터 세무전문위원 2013.11.20 07:00
글자크기

[머니디렉터]

↑왕현정 현대증권 투자컨설팅센터 세무전문위원↑왕현정 현대증권 투자컨설팅센터 세무전문위원


증여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돈을 내 자녀에게 주는데 무슨 세금이냐며 증여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항변하던 사람들도 부의 대물림이나 소득재분배차원에서의 과세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과세당국의 적극적인 의지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시행되는 차명재산에 대한 증여추정 과세적용으로 인해 증여의사 없이 단순 명의 분산된 자산마저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과세규정을 명확히 했다.



그저 투자관점에서 혹은 절세차원에서 가족명의 분산이 자연스러웠던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 여건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인한 국가의 의지를 감안해 적법한 증여방식을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세하면서 증여하길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대체로 증여는 저평가된 자산을 일찍 증여하고, 그 증여로 인한 수증자의 자산증가를 기대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이다. 따라서 적절한 증여시점의 판단은 중요한 의사결정요소다.



이는 상속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재산이 증가할수록 상속세 부담을 키우는 것이 자명해지기 때문에 사전증여로 인해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것은 세법이 허용한 적법절차이다. 상속을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당장 증여세를 내는 것은 생돈 나가는 것처럼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증여세 부담을 해두면 누진세율 구조로 인한 미래 과중한 상속세부담을 분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세금없이 재산을 주는 것이 당연하던 사고방식에서 적법한 사전증여로 인한 납세를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최근 적법한 증여범위에 대해 납세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어 한마디 하고자 한다.

'국세청 고객만족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세무문의를 해소하고자 하는 납세자 질문이 있었다. "자녀에게 증여공제만큼 증여 후 증여세신고를 마친 다음에 그 돈으로 주식매매를 해 자녀계좌 평가액이 증가하는 경우 추가로 증여세문제가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과세당국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귀하가 자녀명의 증권계좌에 금전을 입금하고 증여세 신고한 후에 그 금전으로 주식을 취득한 후 단순히 주식가치가 상승한 경우에는 주식가치 상승분에 대하여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 것이나 귀하가 계속 반복적으로 주식을 취득 양도를 반복하여 매매차익이 발생한 경우 즉, 귀하의 노력에 의하여 자녀가 주식매매차익을 얻은 경우에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 및 제42조에 의하여 타인의 기여에 의하여 재산가치 증가분에 해당하여 추가로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증여신고를 적법하게 한 뒤라도 부모의 재산증식기여도를 증여로 또 과세할 수 있다? 이 답변에 숨은 과세논리는 '증여세 포괄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 열거주의 혹은 유형별 포괄주의로는 고액재산가의 변칙증여를 과세하지 못해 매번 세법을 개정해오던 과세당국이 변칙증여를 뿌리뽑기 위해 2004년에 빼든 카드였다.

이로써 표면상 증여가 아니더라도 숨겨진 변칙거래로 인한 불합리한 재산증가에 대한 증여세과세가 용이해진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불합리한 재산증가에 대한 기준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이 기준은 세무공무원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고 그 취지나 과세성격상 조세법률주의에 준한 엄격해석과 증여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있어야 한다.

위 답변에서 근거로 제시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2조는 타인에 의한 기여를 증여로 보고 과세하는 조문이 맞긴 하다. 이 조문에는 미성년자에게 재산을 증여한 후 5년 이내 재산가치 증가사유로 인해 이익을 얻으면 그 이익을 증여로 본다는 내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산가치 증가사유란 부모의 계속·반복적인 매매의사결정의 도움이 아니라 개발사업 시행이나 사업 인허가 등 중대한 의사결정 사유로 인해 가치가 월등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얻은 이익을 견제하기 위한 사유여야 한다.

적게 증여하고도 멀지 않은 장래에 증여자산의 가치상승을 당연히 담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유인 것이다. 즉 재산가치 증가사유란 단순히 부모가 매매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으로 정의되기보다 부모의 기여도와 상황의 특수성, 증가사유의 중대함도 따져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를 해줄 정도라면 그 증여재산의 소비가 목적이기보다는 자산가치 증식을 염두에 둔 투자라는 것쯤은 미루어 알 수 있다. 따라서 증여 후 자녀재산의 재투자에 있어 적절한 조언과 동시에 그 실행을 돕는 것이 정서상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노력해도 항상 수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단순 매매 운이 좋아 수익이 생긴 경우 부모의 투자조언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증여재산을 모태로 하였으므로 수증자인 자녀에게 귀속되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운이 나빠 손실이 나면 그 손실도 수증자인 자녀의 몫이기 때문에 투자의 실패를 부모가 대신 메꿔 줄 수 없다.

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31조의9 제6항에 해당하는 엄밀한 의미로의 재산가치 증가사유가 아니라면 부모조력에 의한 자녀재산 증가분만을 지목해 증여로 과세할 수 있다는 과세당국의 답변은 과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내리사랑이 참 각별하다. 최근 패륜범죄 등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된 편이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다시피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자녀가 장성해 소득이 생기기 시작해도 아직 독립이 요원하다면 자녀의 의식주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마련이다.

물가는 높고 소득으로 집 한 채 마련은커녕 임대조차도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어려운 경제여건 하에서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당연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능력 있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조력은 증여와 맞닿아 있기에 세법상 적정선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세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부모의 조력까지도 포괄주의 미명하에 과세범주에 넣는다면 이는 문리·엄격해석을 요하는 법을 유추·확대해석 하는 형태로까지 위험수위가 올라가게 된다.

증여추정과세 등 자칫 납세자에게 과세부담이 가중되기 쉬운 현 상황에서 증여포괄주의를 적용하기 전에 세법의 취지와 그 성격에 맞는 과세의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