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블룸버그
벽돌(브릭·brick)을 쌓듯 플라스틱 브릭을 쌓아올려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레고의 장난감은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디자인 아이디어로 꼽힌다. 승승장구했던 레고의 성장세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고가 가지고 있던 브릭 장난감의 특허권이 만료된 것이다. 레고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연평균 14% 성장하며 5년마다 회사 규모를 두 배로 불리는 황금기를 누렸지만 특허권 만료로 유사 제품이 쏟아지면서 90년대 초반 성장세가 한계에 부닥쳤다.
1998년 회사 설립 사상 첫 적자를 낸 데 놀란 레고 창업자의 손자는 덴마크 명품 오디오회사인 뱅&울프슨의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폴 플로우만에게 경영을 맡겼다. 플로우만이 보기에 당시 레고가 맞닥뜨린 경영 환경은 10년 전과는 전혀 달랐다. 세계 최대 장난감 판매업체인 토이저러스나 유통업체 월마트에는 비디오게임을 비롯한 새로운 장난감이 넘쳐났고 경쟁사들은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겨 덴마크 생산을 고집하는 레고보다 훨씬 다양하고 값싼 장난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2004년초 레고는 자체 분석을 통해 자사 제품 포트폴리오의 94%가 수익성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흥행과 맞물려 인기를 누렸던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가 잊혀지면서 불과 몇 년 만에 매장 진열대 구석으로 밀려났고 '갈리도르'는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품 개발에 대한 전권을 갖게 된 디자인팀이 1997년 7000개였던 레고의 장난감 모델을 2004년 1만2400개로 늘려놓은 탓에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로버트슨 교수는 플로우만이 추진한 혁신의 결과물이 전혀 '레고'답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레고의 대표 제품인 '레고시티'의 매출도 급감했다. 1999년 전체 매출의 13%를 차지했던 '레고시티'의 매출 비중은 2004년 3%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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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위기에 빠진 레고는 혁신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레고가 구원투수로 영입한 이는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맥킨지 출신의 조르겐 빅 크누드스톱이었다. 크누드스톱 CEO는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레고 특유의 단순한 디자인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
로버트슨 교수는 저서에서 1999-2003년 레고가 추진한 혁신이 '상자 밖의 생각'(out of the box thinking)에 따른 것이었다면 2003년 이후의 혁신은 다시 상장 안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기감 속에 '브릭'이라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 밀어붙인 혁신은 끝내 통제력을 잃고 실패를 야기했지만 '레고시티'의 경찰서와 소방차 등을 중심에 놓고 추진한 혁신은 결실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레고는 경기침체가 한창이었던 2007-11년 세전 순이익을 4배로 늘렸고 2008-10년에는 애플보다 더 빠른 순익 증가세를 기록했다. 레고의 매출은 지난 5년간 연평균 24%, 순익은 40%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