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면 돈" 王짜증 악성고객, 금융권 민원 백태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변휘 기자 2013.11.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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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소비 좀 먹는 블랙컨슈머](4-1) 3년 '개근'한 민원인도

#한 생명보험사의 보험 상품에 가입한 A씨. 보험내용에 대한 안내가 충실하지 않다며 항의하는 바람에 회사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항의는 해당 직원의 사과에도 누그러질 줄 몰랐다. '민원팀에서 전화를 하라니까 왜 해당 직원이 했느냐, 어디 나랑 밤새도록 통화 한번 해보자'며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무리한 요구가 욕설과 함께 이어졌다. 이후에도 꾸준히 전화를 해 '고객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반성문을 자필로 써 보내되, 한 글자씩 다른 색깔로 써라', '콜센터 센터장이 매주 전화해 상품을 반복해서 설명하라' '지금부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50회 반복하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견디다 못한 회사에서 응대를 중지하기로 결정하자 콜센터, 민원팀, 이 보험사의 각 지점 등에 마구잡이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

#한 시중은행에 적금 만기로 돈을 찾으러 온 B씨. 갑자기 '왜 내 돈에서 세금을 떼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자도 소득이기 때문에 정해진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 내용이 가입할 때 약관에도 나와 있다"는 은행원의 설명은 소용이 없었다. 그는 '불완전판매를 한 거다, 가입할 때 녹취록을 가져오라', '나는 세금에 대해 들은바가 없다, 고객을 무시하고 속이는 것 아니냐' 등의 주장을 펼치며 끈질기게 항의했다. 그날 해당 창구의 업무는 몇 시간에 걸쳐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불만도 커져갔다. 견디다 못한 은행원은 상품권과 사은품 등을 줘서 B씨를 돌려보냈다.



"우기면 돈" 王짜증 악성고객, 금융권 민원 백태


"우기면 다 된다." 금융권의 블랙컨슈머(악성민원인)는 그 어느 업권보다 사소하고 끈질기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일부러 늦게 지급했다거나 은행에서 상품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등의 민원제기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금융사는 당연히 응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런 민원이 '블랙컨슈머'에게서 제기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앞뒤가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담당자 괴롭히기. 인격적 모독이나 협박성 악담, 신체 위협행위 등의 언어를 서슴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업무를 방해한다. 이자가 너무 적다며 '3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고객센터를 방문해 항의하거나 4개월에 걸쳐 같은 민원만 하루에 100건씩 제기하는 등 '불굴의 스토리'도 찾기 어렵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잘못이 없어도 기분이 안 좋으니 당장 와서 무릎을 꿇고 빌어라, 매일 몇 시 몇 분에 전화해서 사과한다고 해라 등의 괴롭힘은 애교"라며 "능력도 없으면서 그 자리에 있느냐는 식의 인격적 모독이나 밤길 조심해라,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위협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블랙컨슈머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C생명의 경우 이미 소송을 통해 '고객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고객이 이에 불복, 10억원을 요구하면서 회사 사옥에 인분을 뿌려 직원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러다보니 보험금 지급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보험사의 보상팀은 '사시미칼을 든 고객이 사무실에 난입했다', '갑자기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쳤다', '보험금을 달라며 관을 들고 와 위협했다'는 등 무용담을 몇 개씩은 갖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약관상 지급하지 않는 보험금을 달라고 항의하는 블랙컨슈머가 많지만 이들이 보험금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담당자 태도에서 꼬투리를 잡아 서비스 부족을 이유로 민원을 넣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은행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장 흔한 민원 중 하나인 '1원 민원'은 그야말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 "적금 만기가 돌아온 고객이 '최종 잔고가 109원으로 끝나는데 왜 110원을 주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은행이 1원 거래를 하지 않아 1원을 더 얹어 10원을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거지냐, 1원을 더 주면 기분 좋아할 줄 알았냐. 잔고대로 정확히 달라'며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지점장까지 불러 항의하다가 사은품을 받은 뒤에야 돌아갔다." 모 은행 직원이 영업점에 근무할 때 겪은 일이다.

부녀회의 횡포는 몇년전부터 등장한 신종 사례다. 새로 아파트가 생길 경우 각 은행 지점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경쟁한다는 점을 악용해 아파트 바자회나 경로당 후원금 등을 챙긴다. '옆 은행은 얼마를 내기로 했다, 대출을 빼앗기고 싶으나'는 반 협박도 일삼는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울며겨자먹기로 냈다, 신규 지점 지점장의 고충이 크다"고 전했다.

블랙컨슈머들로 인한 피해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당장 다른 고객들을 응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인력과 시간이 이들을 상대하는 데 소모된다. '제 값 주고 물건을 사서 얌전히 돌아간' 다수 고객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부당한 민원을 해결하느라 들어가는 금전적 비용도 문제다. 대다수 금융사들이 블랙컨슈머들을 소정의 사은품이나 상품권 등을 주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견디다 못한 직원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심적 고통은 또 다른 비용이다. 한 생보사 직원은 "보험금을 못 주면 반성문이라도 쓰라고 해서 쓴 적도 있다"며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블랙컨슈머에 대응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다. 그나마 보험권에서는 응대방안과 매뉴얼 등을 만들고 전문 상담사를 두는 등 대책을 찾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아직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은행연합회의 공동 대응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혹시나 소비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난을 들을까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워서다.

보험권 역시 회사간, 유관기관간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고 처벌규정도 미미해 근절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블랙컨슈머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있어야 자율조정이 가능하다"며 "당국이 업계 의견을 모아 명확한 판단기준을 만들고, 공동 방안을 마련해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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