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펑'소리나 다쳤다, 보상해줘" 알고보니…

머니투데이 정지은 기자 2013.11.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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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 좀 먹는 블랙컨슈머](3-1) 천자만별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전자업계

"TV에서 '펑'소리나 다쳤다, 보상해줘" 알고보니…


국내 대형 전자업체 A사는 최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 고객이 A사 TV에서 "퍽"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노모가 넘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며 치료비와 정신적 보상 위자료로 수천만 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는 제3자의 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후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고객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사 게시판에 '후안무치 A업체'라며 악성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A사에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고보니 이 사건은 처음부터 A사에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접근한 '블랙컨슈머'(악덕소비자)의 만행이었다. 원인을 조사한 결과 해당 TV는 오래 전부터 고장난 채 방치됐고 노모의 부상은 집안 가구에 부딪쳐서 넘어져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객은 계속 인터넷에 악성루머를 퍼뜨렸다. 그는 공갈·협박 등 악성행위를 지속하면 고소하겠다는 기업의 강경한 자세에 억지행각을 멈췄다.



◇제품문제 아니라도 일단 환불부터 요구=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A사처럼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경우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발생한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협박하는 사례가 넘친다. 신제품이 나오면 인터넷에서 사용자들의 반응을 참고하는 전자업계의 특성을 노린 것이다.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거지 뭐겠어요. 성공하면 보상금 얻고 아니면 말고,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걸어요. 작정하고 덤벼드는데 당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전자업체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들어오는 블랙컨슈머 사례는 종류만 해도 다양하다. 한 직원은 "종류만 나열해도 수십 가지로 상식선에서 이해가지 않는 무리한 요구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B전자업체는 요즘 양문형냉장고를 구매한 한 부부의 무리한 환불 요구에 지칠 대로 지쳤다. 이 구매자는 처음에는 소음문제를 지적하더니 다음엔 냉장기능에 문제가 있다며 계속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몇 차례 확인해도 제품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사실은 부인이 이 제품을 구매했지만 평소 C전자업체 제품을 선호하는 남편이 계속 제품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 부부싸움을 하다 환불 요구에 나선 것이었다.
이미 환불기간이 지난 상황이라 정 그렇다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겠다고 했지만 이 부부는 여전히 환불을 조른다.

청소를 하지 않아 전자레인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업체 탓으로 돌리며 환불을 요구한 소비자도 있다. B업체 관계자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이물질이 떨어진 전자레인지를 그대로 사용한 탓에 냄새가 난 건데도 제품결함이라고 우기는 상황"이라며 난감해했다.

또다른 전자업체 D사에는 김치냉장고에 문제가 생겨 김치가 모두 상했다며 김칫값을 보상해달라는 주부의 요구에 혀를 내둘렀다. 이 주부는 보통 1㎏당 5000원인 김칫값의 2배 수준인 1㎏당 1만원의 가격으로 총 15만원을 피해보상액으로 제시했다.

D사 관계자는 "서비스센터에서 방문해 제품결함을 확인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음에도 막무가내식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보상에 합의해줬다"며 "상한 김치를 확인하려 김치 회수를 요구했지만 이 주부는 이미 다 버렸다는 식으로 발뺌하더라"고 토로했다.

◇블랙컨슈머 구별법 만드는 전자업계=이외에도 단순 변심을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고의로 제품을 훼손한 뒤 환불을 주장하는 등 전자업계는 다양한 블랙컨슈머에게 시달리고 있다.

환불이나 보상만 요구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A사는 제품 구매자가 아닌데도 무턱대고 고객콜센터 상담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고객 때문에 아예 시스템을 바꿨다. 이 고객은 매일 오전 11시만 되면 A사 고객콜센터에 전화해 욕설을 했다.

결국 A사는 상담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참을 수 없는 폭언 또는 성희롱을 하는 고객의 경우 상담사가 특정 버튼을 누르면 법적조치 관련 ARS(자동응답전화) 안내가 나가고 바로 통화가 종료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다고 전자업체들이 마냥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업체들은 블랙컨슈머에 대응하는 별도 지침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한 전자업체의 경우 제품교환이나 환불횟수가 일상적인 수준을 초과하는 고객은 고객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회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사후조사를 진행하고 법적 조치 등 세부방안을 결정한다.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고객이 업무에 지장을 줄 수준으로 난동을 부리거나 폭언을 할 경우 인근 경찰지구대에 연락해 협조를 받는 체계도 마련했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폭언 또는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고객의 통화내역은 모두 보관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사전 경고 조치를 취해도 행동에 변화가 없는 블랙컨슈머는 고소나 고발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진행한다"며 "블랙컨슈머를 구별하기 위해 관련 사례를 따로 정리해 서비스센터나 콜센터 직원들과 주기적으로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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