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시언의 부활...우리는?

머니투데이 김준형 경제부장 2013.10.2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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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본 세상]

케인시언의 부활...우리는?


뉴욕 특파원으로 나가 있던 2009년 여름, 집을 팔고 무주택자가 됐다.
집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데 기여한 사람 중 한명이 얼마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이 한참 시작되던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예일대 캠퍼스의 연구실을 찾았었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주택 버블에 이야기가 미치자 "저도 한국에 집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한국은 미국과 좀 다르지 않을까요"라고 슬쩍 물었다.



"값을 조금 덜 받더라도 빨리 팔아야 한다"라는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시장은 비이성적 충동에 의한 거품이 생긴다는 점을 실증,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s Hypothesis)'을 공박한 학자다운 조언이었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분이 국내 총생산(GDP)을 앞지를 정도로 거품이 심하다. 미국의 부동산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파생상품을 통해 증권화가 됐기 때문에 전세계 투자자들의 자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첫번째 인터뷰 3개월뒤 베어스턴스가 사라지고, 10개월 뒤에는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다.
기자들이란게 글만 앞서고 정작 제 앞가림은 못하는 터라 집을 팔지 않고 뭉개고 있었지만 2009년 6월 다시 그를 찾아가 만났을 때 똑같은 충고를 듣고는 느낌의 강도가 달라졌다.(실러 교수는 예일대에서 제공하는 관사에서 살고 있었다).

집을 팔아야 할 다른 이유도 겹치고 해서, 그로부터 한 달쯤 뒤 매입자가 고맙다고 할 정도로 헐값에 집을 급매로 팔았다. 지금은 연말에 또 전셋값 올려줄 일이 심난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실러 교수는 '케이스-실러 주택지수'로 유명할 뿐 아니라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의 비이성적 거품과 공포를 예견하는 등 자산가치 평가와 예측의 권위자이다. 미 증권업협회 소속 중개인 자격증도 갖고 있을 정도로 현실에 발을 딛고 산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2008년 그를 '세상을 구할 50인의 경제학자'로 꼽은 적도 있다('움직이는'이 아니라 '구할' 경제학자이다. 나를 구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은 한참 이야기하다가 "on the other hand(다른 한편으로는)"이라고 빠져가는데 실러 교수는 이론과 현실을 한 손에 거머 쥔 '외팔이(one hand) 경제학자'였다. 밖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는데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해법'으로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러가 논박한 '효율적 시장 가설'의 주창자인 유진 파머 시카고대 교수가 함께 노벨상을 받은 것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담수학파(시카고, 카네기 멜론 처럼 호수 근처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신고전주의 학파의 별칭)'들에게 보내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마지막 이별 선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의 신념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현실 속에서 망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파머의 수상 소감은 그래서인지 몹시 덤덤했다.

실러의 노벨상 수상 직전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후임으로 재닛 옐런 FRB 부의장이 지명됐다. 옐런 역시 실러와 마찬가지로 시장은 완전하지 않으며,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재정 금융 정책을 펴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2001년 노벨상을 받은 남편 조지 애커로프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과 시장의 불완전성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실러의 노벨상 수상과 옐런의 FRB의장 지명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자리잡은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몰락, 그리고 염수학파(MIT 하버드 콜롬비아 등 해안가에 자리 잡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케인지언)의 부활이라는 흐름을 상징한다.

1970년대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을 계기로 밀턴 프리드먼이 케인지언 진영을 헤집은 이후 30년간 권좌에 올라 있던 '담수 이론'은 금융위기 이후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은 항상 균형을 찾고 적정가격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은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명제와 다를 바 없는 방관과 공범의 논리로 빠질 위험성을 확인한 것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케인지언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시장은 효율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부자들이 다 먹고 배부르고 나면 국물이 떨어진다"는 신자유주의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의 신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복잡한 수식의 완결성으로 포장된 신고전파 경제학은 약탈적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켜 수요기반을 파괴시키고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잠식하는데 기여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정부는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극단적 상황에서는 항상 '최후의 위기관리자(Risk manager of last resort)'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들의 신념은 실제로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각국 정부들이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명제가 됐다.

현실은 이처럼 케인지언의 부활을 선언했음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익숙해진 신고전파의 효율적시장가설과 신자유주의 논리가 떠나지 않는 '경제이론의 지체현상'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 및 수요기반을 창출해야 할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라는 어정쩡한 정책의 틀에서 헤매고 있는 것도 현실과 이념의 부조화에서 나오는 딱한 현실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뒤에 처지는 국가와 국민들이 나타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 각국 정부들은 이를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세워야 한다. 불평등 심화를 방지할 조세 정책이 그 같은 예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수 있다는 위험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에 주로 하고 싶은 말이지만 일반인들도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4년전 실러교수에게 들었던 이 말을 지금도 정부, 기업, 정치권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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