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막힌 M&A와 IPO...'악순환' 벤처투자

머니투데이 송정훈 기자, 김성은 기자 2013.10.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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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회수 부진으로 창업후기기업 선호 '악순환'...규제완화 및 정책자금 '마중물' 역할 필요

"피가 심장으로 원활하게 돌아오지 못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투자자의 자금 회수길이 막혀 자금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민간 연구기관 벤처 담당 연구위원)

전문가들은 벤처산업 '돈맥경화'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회수수단이 없다는 것을 꼽는다. 벤처 투자자들이 M&A나 IPO(기업공개) 등의 부진으로 대규모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창업후기 벤처기업 투자를 선호하고, 전반적인 벤처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나오는 벤처산업 육성정책이 매번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M&A·IPO 회수수단 '지지부진'=창업투자회사(창투사) 등 VC(벤처캐피탈)의 대표적인 벤처 투자금 회수수단은 M&A(인수합병)나 기업공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국내에서는 여의치 않다.



올 상반기 VC의 M&A를 통한 자금 회수 금액은 11억원으로 전체의 0.4%에 불과했다. 실적을 거론하기 무색할 정도로 걸음마 수준이다. 반면 미국 VC들이 같은 기간 M&A를 통해 회수한 금액은 39억 달러(약 4조2000억원) 규모로 전체의 57.9%에 달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기업공개도 최근 증시 침체 여파로 부진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의 신규 상장은 지난해 22건으로 전년 60건에 비해 38건(172.7%), 벤처붐 당시인 2001년(171개)에 비해서는 무려 149건(677.3%)이나 줄었다. 올 상반기 들어서도 12건에 불과해 비슷한 추세다. IPO를 통해 벤처기업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얘기다.

투자자 입장에선 자금 회수길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벤처기업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 분야라는 점에서 자금 회수가 불투명하면 투자를 주저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다.


한 대형 벤처캐피탈 대표는 "벤처기업은 소위 성공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반면 10개가 창업하면 1개 정도가 성공할 정도로 리스크가 크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수시장이 지지부진하면 확실한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는 한 투자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 창업후기 기업 선호, 기업 경쟁력 약화=이러한 벤처투자 기피현상은 투자자들이 창업초기 기업보다 창업후기 기업을 선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창업초기에 비해 창업후기 기업이 M&A나 IPO 등을 통한 자금 회수가 용이하기 때문. 미래의 성장 가능성보다 현재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는 기업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실제 올 상반기 벤처캐피탈의 업력별 투자금액을 보면 3년 이내 초기단계는 2008년 40.1%에서 30%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7년 초과 후기단계는 24.7%에서 44.6%로 급증했다.

이같은 현상은 벤처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실있는 벤처기업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완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정적인 벤처기업을 선호하다보니 벤처자금이 우량 기업에만 쏠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붐 이후 벤처기업의 성장성이 오히려 악화되고 수익성도 정체현상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소기업청의 벤처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성장성 지표인 전년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2011년 14.4%로 2000년 44.3%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4.8%로 4.9%에 비해 비슷한 수준이다.

◇대기업 M&A 금지 완화, 정책자금 투자 마중물 역할 해야=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M&A와 기업공개 등 회수수단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 M&A는 대기업 M&A의 금지 조항 완화와 세제혜택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IPO는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통로인 코넥스 시장의 개인투자자 진입규제를 완화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국내 벤처기업의 M&A를 확대하려면 대기업의 M&A 금지 조항은 물론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주식스왑 등의 세제혜택을 확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IPO 활성화는 코넥스 시장의 유동성 확대를 위해 개인투자자의 기본예탁금을 현재 3억 원에서 대폭 낮추는 등 진입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민간 투자자들과 공동으로 벤처펀드 등을 조성해 벤처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벤처산업에 투자와 회수. 재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자금이 민간자금을 끌어들여 벤처투자를 활성화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다는 것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그 동안 정부 정책자금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투입되면서 마중물이 아니라 폭포수 역할을 해왔다"며 "이 때문에 벤처산업에 민간의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정책자금이 눈먼 돈으로 인식돼 방만하게 사용되면서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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