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대법원이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 소송과 관련, 은행 측의 승소 판결을 내린데 대해 키코 가입으로 수백억원 손실을 본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판결은 이 나라에서 중소기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며 강변했다.
키코 피해와 관련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향후 금융권에서 어떠한 부도덕한 상품이 나오더라도 용납하겠다는 일종의 '탐욕금융의 자율화'를 선언해준 것"이라며 "이번 판례가 있는 한 중소기업을 포함한 금융소비자들은 앞으로 제2, 제3의 키코 사태가 발생해 피해를 보더라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키코와 관련한 기업과 은행 간 법정공방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팽배했던 2008년 시작됐다. 당시 수출 주도형 중견·중소기업(이하 중기) 상당수는 은행 측이 수출에 따른 환율변동을 헷지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제시했던 키코에 가입해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받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기들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 상품에 가입한 중기들은 오히려 큰 손해를 입었다.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수출 주도형 중기들이 키코 가입으로 인해 입은 피해액이 무려 10조원에 달한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중기들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을 상대로 잇따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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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키코로 손실을 본 중기에 대해 은행이 최대 70%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은 중기들에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이는 은행 측 책임을 10%에서 최대 50%까지 인정했던 판례에서 벗어나 은행 측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사실상 법원이 기업 측 손을 들어준 첫 번째 사례였다.
하지만 이날 사법부 최고기관인 대법원 판결로 5년 이상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기다려온 키코 가입 기업들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수산중공업 등 4개 중기가 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키코 상품은 환헤지에 부합한 상품으로 불공정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최종적으로 은행 측 손을 들어 준 것.
결국 대법원 판결로 수출 주도형 중기들이 키코 가입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사라졌다. 키코 가입 중기들이 향후에도 은행 측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지만, 대법원 판례가 나온 이상 기업 측이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창조경제 기치를 내걸고 중기 육성에 발벗고 나선 박근혜 정부. 현 정부 하에서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중기들이 거대 금융권 횡포로 인해 피해를 입고 존폐 위기에 내몰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적인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