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노총각 김과장 "추석연휴가 제일 싫어요"

머니투데이 정지은 기자 2013.09.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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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블루스<22>]가짜 애인 시나리오도 안 먹히는 집안

모처럼 추석연휴를 맞아 고향을 다녀온 대기업 김영민(36·가명) 과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 친지들에게 시달리다 황금 같은 연휴를 모두 날려버린 탓이다.

집안 문턱을 밟자마자 시작된 "도대체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잔소리는 연휴 내내 이어졌다. 불혹을 코앞에 두고 아직까지 짝을 찾지 못한 자신의 신세가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도 충분히 예상을 했던 상황이다. 나이 앞줄이 3으로 바뀐 뒤부터 매년 명절마다 들었던 잔소리기에. 그래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한두 번은 덕담이라고 치지만 여기저기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아프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작전을 짰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기로 했다. 임시방편으로나마 이번 추석만이라도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도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김 과장의 말에 가족 친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상대방의 나이부터 직업, 고향을 묻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들은 언제 어디에서 만났고 언제쯤 결혼할 거냐며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후회가 들었다.

김 과장의 고모는 아예 궁합부터 봐야한다며 생년월일을 묻고 나섰다. 김 과장이 여자친구와 나눈 대화가 궁금하다며 카카오톡 대화방 좀 보여 달라는 조카의 말에 기겁했다. 아무리 둘러대도 식구들의 관심은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왜 그 처자와 결혼을 하지 않느냐며 김 과장을 들볶는 게 아닌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얼마 전 유부남인 회사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본다. 그러고 보니 한창 신혼의 재미에 빠져있던 동료가 본가와 처가 어르신들께 용돈을 드리다가 용돈 없이 한 달을 버텨야 했다고 했던가? 처남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처가 먼저 갔다가 본가에는 발도장만 찍고 왔다는 후배 박모 대리의 하소연도 생각난다.


그렇게 잠시 작은 방에 앉아 홀로 노총각 신세를 위로하는 그의 등에 '철퍼덕'하고 날벼락이 쳤다. 정체는 아까 궁합타령을 하던 큰 고모의 손바닥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손까지 매울 수 있을까 흘겨보고 있으니 고모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장가가기 전에 부모님께 용돈 드릴 수 있을 때 많이 드려야 한다며 김 과장을 들들 볶는다. "듣자하니 이번에는 회사에서 주는 상품권도 안 드렸다며? 얘가 벌써부터 부모님께 돈을 아끼네. 그러면 못 써. 나중에 장가가면 처가 눈치 보느라 더 용돈 드리기 힘들 텐데."

올해 추석에는 회사에서 상품권을 안 줬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고모의 귀에는 안 통한다. 요즘 상품권 안 주는 대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고모를 무시해도 유분수라며 더 역정을 낸다. 내가 뭐 깨소금인가 들들 볶이고 또 볶인다.

내년 설날에는 제발 똑같은 악몽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일단 결혼이 급선무라는 것쯤은 김 과장도 알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결혼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필이면 이번 연휴는 왜 이렇게 길었던 걸까.

"황금연휴는 무슨, 나한텐 악몽이었어."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홀로 투덜거리는 김 과장의 낯빛은 어둡기만 하다. 차라리 내년에는 가짜 애인 시나리오가 아니라 여행을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또 김 과장의 끔찍한 추석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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