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점령한 '일베'···'종범', 'ASKY'가 무슨 뜻?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3.08.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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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용어 사용 논란… 일베 용어 어떤 게 있나?

'종범'이라는 단어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일베 사용자' 논란에 휩싸인 버스커버스커 김형태. /사진=머니투데이'종범'이라는 단어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일베 사용자' 논란에 휩싸인 버스커버스커 김형태. /사진=머니투데이


# 부산 출신의 최모씨(30·회사원)는 최근 사투리 사용을 급격히 줄였다. 10여년 전 상경해 서울 생활하면서 한번도 사투리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최근 동료에게 웃으며 "와 그라노"(왜 그래?)라고 했다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웠다. 일베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기 위해 말 끝에 '노'(盧)를 붙이는 게 일상 언어다. 최씨는 "일베가 사회적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는 것만 듣고 들어가보지는 않았는데, 지인이 그런 말을 하니 황당했다"고 했다.

# 밴드 버스커버스커 멤버 김형태(22)는 지난 22일 트위터에 "허니지 형들 차트 종범(사라졌다)"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일베 사용 논란에 휩싸였다. 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김형태는 "경솔한 단어 사용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다.



온 나라가 '일베 용어'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외국 서적을 번역하면서 '민주화'라는 말로 의역한 출판사는 즉시 사과하고 책자를 전량 회수했다. '노무노무', '쩔뚝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걸그룹 크레용팝은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광고가 게재된 지 하루만에 광고가 사실상 중단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일베 사용자들이 '만물 출처 일베설'을 주장하면서 모든 인터넷 용어의 원조가 일베라는 잘못된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상시 온·오프라인에서 범용되던 용어들을 일베 사용자들이 사용하면서 '오염'시켰다는 주장이다.



◇'종범', '~했노' 어디까지 일베 용어?
김형태가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된 '종범'은 일베 용어보다는 디씨인사이드(디씨) 야구갤러리(야갤), 엠엘비파크(엠팍) 등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이승엽, 양준혁 등 선수의 통산 홈런과 안타 등 수치를 제시하며 이종범 선수를 깎아내리는 데 반발한 일부 기아 타이거즈 팬들이 "종범신(神)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화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를 비꼬아 다른 팀 팬들이 '종범'이라는 단어를 '뭔가 사라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온라인에서의 의미가 굳어졌다. 김형태가 트위터에 쓴 '허니지 종범'도 음원순위 차트에서 허니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일베가 여성 및 호남 혐오, 전 대통령 희화화 등으로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자 현실에서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는 일베와 상관 없이 평상시 영남 사투리를 쓰던 사람들까지 '일베 회원'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의문문 끝에 '노'를 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모씨(35·회사원)는 "엄밀히 말하면 경상도에서도 모든 의문문 끝에 '노'가 붙지는 않는다"며 "경상도 사람도 안 쓰는 출처불명의 말들이 일베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베 사용자들이 원 뜻을 왜곡해 사용하는 ASKY. 네이버 지식인은 일베 사용자들의 답변으로 도배된 상태다. /사진=네이버 캡처일베 사용자들이 원 뜻을 왜곡해 사용하는 ASKY. 네이버 지식인은 일베 사용자들의 답변으로 도배된 상태다. /사진=네이버 캡처
◇용어 '훔치기' 넘어 용어 '강도질' 나선 일베


일베 용어를 사용한 공인들이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자 일베 회원들은 모든 인터넷 유행어를 '일베 용어'로 만들어 용어 사용을 두고 비(非) 일베 사용자들끼리 싸움이 붙는 걸 즐기는 이른바 '대국민 분탕질 프로젝트'에 나섰다.

가장 먼저 목표가 된 단어는 '힐링'. 일베 사용자들은 힐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포털 등에 게재될 경우 일베 게시판 안에 링크 등을 첨부하고 이른바 공격 '좌표'를 설정한다. 그 뒤 수백명씩 댓글을 달면서 "힐링 이거 일베 애들이나 쓰는 용어인데 함부로 쓰면 되느냐"고 주장한다.

일베 회원들은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행어도 '일베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애인) 안생겨요'라는 뜻으로 쓰이는 ASKY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2007년부터 쓰이던 ASKY는 2008년 가수 유희열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독자 사연을 읽어주면서 대중화됐다.

최근 일베 사용자들은 ASKY 뜻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밀고 있는 뜻은 '아따(A) 슨상님(S) 계실 적엔(K) 이런 일 없었는디(Y)'다. 호남과 김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이 같은 일베식 표현이 인터넷에 펴져나가고 있다.

◇'재미'를 가장한 혐오 조장 용어 범람
대다수 누리꾼들이 지적하는 일베 용어의 문제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교묘하게 내포한 채 '재미'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전 대통령 비하, 민주화운동 폄훼, 여성 혐오 등이 버무려진 채 '재미있다는' 이유로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베 회원들이 사용하는 '삼일한'이라는 단어는 '한국 여자는 3일에 한번씩 때려야 한다'는 뜻으로 여성 혐오를 내포하고 있다. 비추천 버튼을 일컫는 '민주화'는 이미 민주화운동 폄훼 의미로 지적 받은 바 있다. 크레용팝이 사용했다 비난 받은 '노무노무', '쩔뚝이'는 각각 노, 김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운지!'라고 외치는 걸 듣고 기겁했다"며 "뜻을 물어보니 '그냥 재미있어 쓴다'고만 하더라"고 했다. 이 교사는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 대통령 조롱의 의미가 담긴 용어를 쓰던 아이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까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일베 운영자 '새부'는 지난 5월 공지글에서 일베 내 용어 사용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의 표현과 풍자가 보장되며 정치적 성향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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